《헿》 덕화맨숀 프로젝트
덕화맨숀은 을지로 구석구석에서 발굴한 글자를 양분 삼아 디자인합니다. 그가 만든 디자인은 따뜻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흔히 한글이 들어간 의류는 촌스럽게 치부 되었습니다. 왜 그가 만든 한글 티셔츠는 이쁠까요.
*본 글은 2023년 6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되는 그의 팝업 스토어의 서문을 소개합니다.
'헿’이라 쓰고 ‘니가 좋아’라고 읽는다. 여기서 ‘좋음’이라는 감정은 대외적으로 발산하기 보다 내 안에서 조심히 드러내는 내재적 애정이다. 짝사랑 같기도, 팬심 같기도 하다. 상사병에 근접한 어딘가 위치한 외마디는 ‘을지로 속 한글 서체’라는 아이돌을 쫓는 사생팬의 사심을 표현한 매우 정확한 부사이다.
덕화맨숀은 을지로라는 지역에 터를 잡은 이후 2021년부터 도시에서 발견한 한글 서체를 디자인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그가 만든것 들을 보고 있자면 의문이 든다. 왜 그가 만든 한글 티셔츠는 이쁠까? 그가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누군가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고심 끝에 만들어졌을 글씨는 시간이 지나며 익숙하거나, 촌스럽거나, 한물간것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을 덕화맨숀은 발견하고 창작의 양분으로 삼고자 분해한다. 그렇게 디자이너를 투과한 결과물은 ‘멋’이라는 새로운 형용사를 입게 된다.
덕화맨숀은 다양성이 만개한 1990년대 을지로를 2020년에 찾아왔다. 고고학자가 지층을 걷어내며 옛이야기를 찾아내듯 도시 곳곳을 탐험하며 숨어 있는 글자를 발굴했다. 그가 발견했던 서체 안엔 젊은 시절 꿈이 담겨 있었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해 사업을 일으켰던 청년은 이제 속살이 드러나는 민들바우가 되어있다. 지난 시간 글씨들도 함께 그 자리를 지켰다. 세월에 때가 묻어 흐려지기도, 풍파 속에서 일부는 갈라지고 벗겨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때문에 덕화맨숀의 디자인은 따뜻하다. 서체를 입은 그의 물건들은 사랑스럽다. ‘촌스러움’을 ‘멋’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을 상상하게 된다. 설레었을 것이다. 글자와 대면하고 오랜 시간 글자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던 이를 만나는 과정 속에서 의도치 않았을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그와 삶을 나누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겪은 과정을 통해 우리 부모세대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성취와 절망, 극복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인간이 늙어가며 새 생명을 길러내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오늘날, 시대의 박물관이었던 을지로가 사라졌다. 많은 건물이 헐렸고 일평생 그곳을 지켰던 분들은 떠났다. 한편으론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덕화맨숀의 디자인으로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기억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을지로가 그 모습을 잃기 전 덕화맨숀을 기다렸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조심스러운 사심을 통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어떤 것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을지로로에 있던 이들의 삶을 서체를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의 애정으로 글자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고 일상을 함께할 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 알것 같다. 왜 그가 좋아하는지. 왜 한글 티셔츠가 이쁜지.
▶ 덕화맨숀 instagram《헿:덕화맨숀 프로젝트》
▶LCDC SEOUL《헿:덕화맨숀 프로젝트》
주인공 : 덕화맨숀 @Duckhwa_mansion
글 도움 : 작은도시이야기 / 고대웅 @tales_of_the_tiny
손 도움 : 차다현 @Typpacc
손 도움 : 오창협 @ch.5_studio
공간디자인도움 : 제로투엑스 / 김성진 @0tox_movement
연출 도움 : 지오훈 @jihaeng.art
막걸리 도움 : 몽타주조 @monta_ju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