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Mar 09. 2023

수액을 맞아도 감기가 낫지 않는 나이

네, 마흔입니다

올해 마흔이 되었다.

새파랗게 젊던 20대에서 느닷없이 내 인생에 오지 않을 것 같던 숫자 30을 맞던 해에 나는 적잖이 우울감을 느꼈다. 30이라는 숫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제까지 뭐 하면서 살았나 후회하기도 하고, 뭔가 인생에서 큰 일을 해내할 것 같은 압박감에도 시달렸다.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서 갑자기 시작된 30대를 조용히 맞이하기는커녕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돌파구 중 하나가 결혼이었을까. 당시 3년 이상 사귀던 남자친구이자 현남편인 인간이 생각보다 빨리 프러포즈를 하지 않아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정도 사귀었겠다, 이 정도 나이면 결혼하자고 할 만도 한데 왜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결혼이라는 것이 여자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변화인지 전혀 몰랐던 나는 순진하게도 30이면 결혼하기 딱 적당한 나이라고 결론 내리고 일사천리로 양가합의 하에 일을 진행했다.


1,2년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가도 되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조바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 더 하고, 여행도 더 많이 가보면서 책임과 의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그 시절을 맘껏 누릴 수도 있었는데 나는 스스로 결혼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이다. 서른에 시집 못 가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날 줄 알았나 보다.


그때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져서 10년이 훌쩍 지나고 불혹의 나이 40을 맞이하게 됐을 때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두지 말자고 다짐했다. 똑같은 1년이 지나가는 건데 38에서 39가 되는 거나 39에서 40살이 되는 것이나 아무 차이도 없다. 굳이 거기에 쓸데없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해가 바뀌던 날 남편이 너도 이제 어쩔 수 없는 40대 중년이라며 가볍게 놀리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로 각광받는 것 같았지만 나는 마흔에 굳이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마흔 앓이, 사십춘기 이 따위 말 흔한 마케팅의 일부라고 세상이 만들어서 떠들어대는 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마흔에 체력이 떨어질걸 대비해서 작년에는 매일 조금씩 운동도 했고, 음식도 가려먹으려고 노력하는 터라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마흔이 되고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호된 감기 몸살에 걸려서 일주일째 앓고 있다. 아이를 밀착케어해야 하는 두 달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3월이 시작되는 날부터 몸에서 슬슬 이상신호가 왔다. 코가 막히고 편도가 붓고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학 동안 무리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처음 며칠간은 병원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진통제만 먹으면서 버텼다. 게다가 아이가 학교가 있는 동안 오전 서너 시간은 넉넉하게 쉴 수 있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단히 집정리만 해놓고 쉬었다. 하루는 미용실에 가서 그동안 미뤄왔던 두피스파를 받으며 편하게 관리받는 호사도 누렸다.


약기운에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아침에 일어날 때면 온몸이 천근만근이었고 일어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휴직 중이기에 망정이지, 이 몸뚱이로 출근해야 했다면 진작에 병가 내고 뻗었겠다 싶었다. 나름 몸에 좋은 영양죽과 과일을 챙겨 먹으며 컨디션이 얼른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5일 동안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6일째가 되어서야 항복하고 아침에 병원문이 열기가 무섭게 진료를 보러 갔다.


감기 몸살에 축농증까지 겹쳐서 두통까지 오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수액까지 놔달라고 했다. 수액을 맞으니 기분 탓인지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이제 수액을 맞아야 감기가 떨어지는 나이가 되었구나. 예전에는 약 한 두 번만 털어 넣고 죽 한 번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지던 컨디션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며칠째 항생제가 들어간 약을 먹어댔더니 몸이 붓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체중은 몇 킬로나 불어 있었다. 그래도 이제 수액을 맞았으니 한결 나아질 것 같았다. 다음날이면 거짓말처럼 모든 게 원상 복귀되어서 평소대로 돌아올 거라고 속단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다음 날이 되어도 여전히 몸이 무겁고 축 쳐지는 느낌이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코로나 걸렸을 때도 수액 맞으니까 바로 좋아졌었잖아. 코로나도 아닌 감기 몸살인데 수액을 맞고도 좋아지지 않을 리가 없잖아. 믿을 수가 없었다.


수액 맞은 당일만 살짝 컨디션이 돌아오는 듯하다가 다음날은 다시 그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절망스러웠다. 하루종일 끙끙 앓다가 또 병원에 갔다. 또 비슷한 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았다. 아무래도 병원을 바꿔야 하나. 이 병원 약이 안 맞는 건가. 그냥 처음 아프던 날부터 병원 와서 치료받을걸 괜히 집에서 버티다가 병을 키운 건가. 아니면 어디 다른데 큰 병이라도 난 건가.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감는다. 간호사선생님은 요즘 날씨 탓에 더 회복이 더딘 거라고 말해주셨지만, 그러기엔 너무 오래간다.


말로만 듣던 마흔 앓이를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는 거라고,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붙일 이유도 없다고 여기려고 했는데.


왠지 40이라는 숫자 앞에서 나는 작아지고 무색해져서 나이에 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래서 30대와 40대는 다르다고, 천지차이라고 40대 돼 보면 알 거라고 언니들이 경고를 날렸던 건가. 웃으면서 농담으로 받아쳤던 30대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체력이 안되고,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데 이렇게 아파버리면 어떡하나.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 이렇게 골골대면서 병원 들락날락거리다가 끝나는 건 아닌가 문득 두려움이 엄습한다.


괜히 아이한테 엄마 너무 아프다고 간호해 주라고 엄살도 부려본다. 이대로 나이 들어가는 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일도 열심히 하고 활기차게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자꾸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자. 내 몸에게 나을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조금 더 허락해 주자.

전보다 회복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 것뿐이라고, 조금 더 기다려주면 될 거라고 생각하자.


날은 따스해지고, 곧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 같은 이 아름다운 봄날에 나는 정말 마흔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 브런치가 느무 재미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