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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10. 2023

브런치 작가로서의 인격과 교양

님아, 그 악플에 답글 달지 마오

며칠 전 의류브랜드 회사와 유명 도넛 업체가 콜라보로이벤트를 해서 옷 구매 영수증과 도넛 두 상자를 교환해서 먹었다는 글을 썼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이긴 하지만 부담돼서 자주 가지는 못하고 일 년에 서너 번 큰 맘먹고 가는 편인데, 도넛 팝업행사까지 함께 하니 나도 모르게 자제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홀린 듯 니트를 하나 구매하게 된 일이 유독 기억에 남아 쓴 글이었다.


처음엔 별 반응 없던 글이 카카오뷰에서 노출된 건지 갑자기 어마어마한 조회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글이 어딘가 올라갔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내 달린 첫 번째 댓글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그 내용이야 둘째치고 굉장히 화가 난 듯한 말투였고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뉘앙스였다.


백번 양보해서 다른 말들은 다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치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댓글로 무작정 “당신”이라니. 이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내 글이 이 사람에게 이렇게나 화를 돋우게 만들었단 말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꼬여도 단단히 꼬인 사람인 것 같다, 집안에 무슨 우환이라도 있나, 도넛 먹으려고 쇼핑한 이야기가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을까 등등 자꾸 그 댓글을 단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악플에 시달려서 스트레스받고 급기야 생을 마감하기까지 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그런데 나는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 브런치 작가도 아니며 SNS 인플루언서 급도 아닌데 왜 이런 댓글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동안 내가 너무 선플에만 둘러싸인 탓도 있는 것 같다. 나의 고민과 걱정거리에 대한 글이 위주가 되다 보니 비슷한 공감대를 느끼신 분들이 주로 나에게 응원과 위로, 격려를 보내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육아에 대한 글 말고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인상 깊은 글들에 대한 반응을 직접 겪어본 적이 많이 없는데 이번에 아주 강하게 헤비급으로 맞닿뜨린 것이다.


내 글에 주로 악플만 달리고, 매번 비난과 비판만 가득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나에게 공감해 주고 응원을 보내주어서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 댓글 하나에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할진대, 자꾸 그 댓글에 마음이 쓰인다. 이래서 사람은 백번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 누려도 한 번 부정적인 것에 휩싸이면 그 작은 하나에 무너질 수도 있나 보다. 이렇게 사람은 기분 나쁘고 부정적인 일에 취약하게 설계되었나 보다. 그래서 부와 명예를 누리며 평생 편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연예인들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걸 백만분의 일 정도쯤은 이해하게 되었다.


한참 고민했다.

그 댓글에 조목조목 하나씩 따져서 논리적으로 맞대응을 해볼까.

아니면 나도 똑같이 비아냥거리며 상대방을 자극시켜서 내가 받은 그 나쁜 기분을 그대로 되갚아줄까.

아니면 그냥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고 기계적인 답을 해볼까.

아니면 일상에 치여 바쁘실 텐데 기꺼이 여기까지 찾아와 내 글을 샅샅이 읽는 정성을 발휘해서 정성스레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미친 척을 해볼까.


결론은, 그냥 무대응으로 하기로 했다.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해도 내 마음이 풀릴 것 같지도 않고, 더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냥 지나가는 댓글러지만 나는 나름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브런치 작가로서 교양과 인격을 수양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기기로 마음먹는 편이 훨씬 내 정신건강에 나은 것 같다. 출간 한 번 한적 없고 구독자수 얼마 안 되는 뭇 풋내기라고 해도, 브런치팀에서 인정해 준 공식 작가가 아닌가. 그 이름과 명예에 걸맞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 글을 읽은 10명 중 10명 모두가 다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그중 몇 명에게는 비판을 살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분처럼 굳이 비아냥거림과 인격적인 비난 없이 객관적으로 비판해 준다면 좋겠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내 마음 같지는 않기에.


사실 그전에 썼던 글에도 몇 번의 부정적인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면 내가 쓴 글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 일부 한 두문장에서 느낀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식이었다. 처음엔 기분 나빴지만 두 번 생각해 보면 그 한 두 문장도 결국 내가 쓴 글이니 거기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아우를 수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갖춘다면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의견도 고찰해 볼 수 있어야 진정 성숙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반기를 두르는 의견을 버선발 들고 반가워하며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노력은 해볼 것이다.


때아닌 악플에 마음은 쓰이고 속은 상하지만 내 글이 어딘가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구독해 주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으니 그와 비례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성장통이라고 여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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