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세계
일주일째 남편이 위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몸살로 한참 아팠는데 내 컨디션이 순식간에 좋아지면서 좀 살겠다 싶어 지니, 거짓말같이 남편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도 경미한 위염으로 아파서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데 그 증상이 다시 찾아온 듯했다.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참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게 사실이다.
일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병을 얻었구나 싶어서 짠하고 애처롭다가도, 며칠 동안 계속 아프다고 하면 슬슬 애잔함을 줄어들고 지겨워진다.
“약은 먹었어? 아직도 안 좋아?”
“그니까 이제 술 진짜 줄여야 돼.”
남편의 아프다는 호소에 처음에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지만 나중에는 슬슬 이제 그만 좀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약만으로는 안될 거 같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통증이 극심한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신경 쓰일 정도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며칠 약을 복용하고 음식도 신경 써서 먹으니 조금 덜 아파하는 것 같았다.
보통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나와 아이 둘이서 침대를 차지하고 남편은 따로 매트에서 잔다. 자기 전에는 혼자 누워서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사람인데 그 날밤에는 웬일인지 한참 동안 아이와 내 옆에 앉아서 머무르더니 어이없는 말들을 꺼냈다.
“내가 처자식 때문 에라도 오래 살아야 되는데, 아직 책임질게 많아서. 이렇게 아프면 안 되는데 말이야. “
“너 내가 많이 아프다고 하니까 나 죽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 거 아니야? “
몸이 안 좋으니 마음이 약해졌는지 평소답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다. 아이 장가보낼 때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둥, 손자까지 키워줘야 한다는 둥 말이 길게 이어지더니 이내 황당한 소리까지 한다.
“너 나 죽으면 부자 남자 만나서 재혼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 뭐라 답할 수가 없어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보고 진짜냐며 추궁하길래 자기 죽으면 열심히 일하면서 혼자서 아기 잘 키울 연구나 해야지 내가 어떻게 재혼 생각부터 하겠냐고 응수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불 끄고 잠이나 자자고 했다.
남편은 이런 식의 이야기를 도통 안 하던 사람인데 이번에 많이 아프긴 했나 보다. 아파서 마음이 많이 약해지니 별 생각까지 다 들었던 모양이다.
30대에는 둘 다 아픈 횟수도 빈도수도 손에 꼽을 만큼 아주 가끔이었는데 이제 둘 다 40대가 되니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제 체력 믿고 함부로 까불어서는 안 되는, 부정할 수 없는 중년의 나이가 된 기분이랄까.
어서 회복하라고 간이 약한 채소류 반찬과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식단을 짜서 없는 요리 실력을 발휘해서 챙겨주었다. 내가 아플 때도 괴롭긴 했지만, 막상 남편이 아프다고 하니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우리 집의 가장이자 기둥인 남편이 건강은 가정의 안녕과 평안이 유지되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10년 차가 넘어가니 서로의 나이 들어감과 심신이 미약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책임져야 할 자녀가 있기에 우리 둘 다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을 몇 십 년은 더 해내야 한다. 아무쪼록 중년에 건강관리 잘해서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 재혼하는 일이 없기를, 재혼해서 내 새끼가 새엄마, 새아빠를 만나 천덕꾸러기가 될 일은 없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