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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2. 2023

소금빵과 제로콜라

중독인생

유명배우가 상습적 마약 투약으로 소환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또 그 배우는 우리나라 최고 로펌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정도 성공한 배우라면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 굳이 일하지 않고도 쉬엄쉬엄 홍보 행사나 다니고 광고 한 편씩 찍으면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눈에 뻔히 보이는 파국을 야기할지도 모를 마약에 손을 댔을까. 공인의 삶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지만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커서 마약으로 회피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건지.


<더 글로리>의 이사라도 금수저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릴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마약 중독으로 인해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결국 파멸로 가게 된다.


인생은 어쩌면 철저한 중독과의 싸움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 강하게 확신이 든다. 건강하고 올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사회가 권장하는 온갖 중독거리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게 엄마로서 큰 임무 중 하나다.


adhd증상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한 가지에 집착하고 꽂히기 쉬운 성향을 가진 덕에 아이는 어려서부터 쉽게 뭔가에 중독되었고 쉽사리 빠져나오질 못했다.


나도 모르게 "중독"이라는 단어를 아이 앞에서 쉴 새 없이 사용한다.


"너 로블록스에 중독됐어. 더 하면 안 돼."

"너 텐텐에 중독됐어. 하루에 세 개만 먹으라고 했잖아."

"너 홈런볼에 중독됐어. 당분간 홈런볼 안 사놓을 거야."

"너 흔한 남매에 중독됐잖아. 이제 만화책 안 사줄 거야."

"너 킨더조이에 중독됐어. 초콜릿 많이 먹으면 이빨 썩어"

"너 돈가스에 중독됐어. 튀긴 음식 몸에 안 좋아. 내일은 안 해줄 거야."

"너 스마트폰 그만 봐. 유튜브 중독이야."


남편한테도 계속 애가 이거에 중독되고, 저거에 또 중독됐는데 어떡하면 좋냐고 끊어내야 되는데 걱정이라고 늘 한탄한다. 아이는 거의 모든 유희에 중독돼서 그걸 끊어내는 게 내 육아 총합에서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이가 뭔가에 몰입하는 건 좋은 거라고 하는데, 나는 몰입과 중독의 그 애매한 경계선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몰입은 독서라든가, 자연관찰, 자기만의 놀이처럼 그래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활동들에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비단 내 아이만 늘 중독에 취약한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늘 무언가에 중독된 인생을 살아왔다.

 

20대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을 마셔댔으니 알코올 중독

거의 하루에 한 잔도 빠지지 않고 마셔대는 커피 덕에 카페인 중독,

미드, 먹방, 야구 등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건강에 유익하지도 않지만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안 하면 몹시 서운하고 불편한 종류의 것들에 항상 중독되어 있었다.


최근에 어렵사리 커피를 끊었다. 이유인즉슨,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여러 번 깨서 화장실을 가곤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문득 원인이 카페인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 욕심이 워낙 많고 수면 욕구가 어마어마한 나이기에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일상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지는 걸 잘 알고 있다.


큰 마음먹고 그간 달고 살았던 커피를 끊어보기로 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콜드브루. 커피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는데 늦은 오후에 마신 커피 한 잔 덕에 밤에 잠을 설치고 불면증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정이 떨어졌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커피숍에 갈 일이 굉장히 많은 일상에서 아메리카노라는 가장 저렴하고 접근하기 쉬운 메뉴를 내 음료 옵션에서 제외시키고 나니 주문할만한 게 별로 없었다.


한참 검색하고 고민하다가 티를 마셔보기로 했다. 그냥 티는 솔직히 너무 맹맹해서 못 먹겠고, 달달하고 쌉싸름한 맛을 겸비해서 내 커피에 대한 욕구를 억누를만한 녀석들을 탐색하다 보니 밀크티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벅스에 가면 스노 바닐라티라테나 돌체 블랙밀크티가 제격이었다. 이것들을 마시고 나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웬만큼 견딜 수 있었다. 물론 홍차 성분에 카페인이 들어있긴 하지만 에스프레소샷에 비하면 양반 수준이라서 그 정도는 허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중독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카페에 갈 일이 있을 때만 마시기로 한 밀크티를 한 두 번 마시니 매일 마시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카페의 맛을 재현하기엔 꽤나 번거롭고, 그렇다고 힘들게 커피를 끊었는데 그보다 훨씬 비싼 가격의 밀크티를 사 먹자고 스타벅스에 굳이 찾아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억지로 참고는 있지만 달콤 쌉싸름한 홍차의 향이 자주 떠올라서 당장 뛰어가서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 다른 중독은 바로 제로콜라다. 나는 평생 탄산음료를 가까이해본 적이 없다. 사이다나 콜라는 피자나 햄버거 먹을 때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만 느끼함을 가시기 위해 먹어봤지 내 돈 주고 사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기분에 콜라를 한잔 들이켰는데, 목을 찌르는듯한 탄산 덩어리들과 억지 트림을 불러일으켜서 속이 순간 뚫리는 느낌을 주는 그 맛이 너무 황홀했다. 그 후로 나는 내 돈 주고 스스로 콜라를 사 먹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 탄산음료를 내돈내산 해본 적은 없으니 그런 내 모습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반 콜라를 마시면 왠지 더 찝찝하니 칼로리가 낮다는 제로콜라를 마시면 죄책감도 덜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제로 콜라 한 병을 마시고 있다. 감기 몸살에 몸에 열이 나고 컨디션이 축 쳐졌을 때에도 나는 빈 속에 콜라를 때려 넣으며 만족감을 느꼈다.



빵은 원래 워낙 좋아하는데 특정 빵에 대한 집착은 없는 편이었다. 보통 크로아상류를 좋아하고 모닝빵이든 식빵이든 치아바타든 단맛은 덜하지만 고소하고 부드러운 빵이 나는 밥보다 더 좋을 때가 많다.

얼마 전 누가 소금빵이 맛있다고 꼭 먹어보라고 추천했을 때에도 나는 빵과 소금이 무슨 조합이냐 싶어서 별로라고 생각했다. 계속 권하기에 못 이기는척하고 한 번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너무나 내 입맛에 잘 맞아서 놀랐다. 그 후로 나는 자주 소금빵을 사 먹었다. 빵집에 갈 일이 있으면 소금빵을 파는 곳인지 꼭 확인했고, 이런 나를 위해 남편도 아들도 소금빵을 먼저 집어서 챙겨다 주었다.


빵값이 워낙 오르기도 했고, 밀가루가 몸에 좋지도 않으니 자제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빵쇼핑을 하자는 나만의 철칙이 있었는데 요즘엔 거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소금빵을 파는 빵집을 지나가게 되면 여지없이 나는 들어가서 소금빵을 여러 개 집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건 과연 나의 욕구인지, 뇌가 강한 욕구에 지배당해서 생각도 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어제는 소금빵과 제로콜라를 같이 먹으면서 강한 행복감을 느꼈다. 빵과 콜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것 같은데 짭짤 고소한 소금빵과 달달하면서 톡 쏘는 콜라의 맛이 어찌나 조화롭던지.

둘 다 몸에 하나 좋을 것 없는 것들인데, 끊어야 하는데, 언제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렵사리 커피를 끊었더니 새로운 복병이 나타나서 나를 중독에 빠트리니 괴롭다.

인생은 어쩌면 중독과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이 싸움에서 나는 언제까지 놀아나고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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