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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6. 2023

평일 낮 VIP라운지의 여자들

사람 구경하기

일주일에 하루는 장을 보러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간다. 백화점을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것도 있지만, 단연코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무료 음료와 다과 혜택 때문이다.


장을 본 다음 무거운 장바구니는 차에 실어놓고 라운지로 향한다. 혼자 널찍한 테이블에 앉아서 공짜로 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가 호사스럽다. 커피를 마시고 있자면 나는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을 보기보다 라운지에서 사람들 구경을 한다.


평일 낮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와서 라운지 커피를 마시는 저 여유로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혼자 그들을 은밀하게 상상하곤 한다. 혼자 온 사람들도 많고, 지인들과 여럿이 와서 하하 호호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90퍼센트 이상은 여자들이다. 혼자 온 사람들은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에 옆에 명품백을 하나씩 끼고 앉아 있다. 옆에는 갓 쇼핑을 마쳤는지 쇼핑백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평일 낮에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백화점에서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과 여유를 갖추게 됐을까. 건물주일까, 남편이 부자일까, 사업가일까. 가끔 남자 고객들도 오는데 그들은 뭐 하는 사람인지 더 궁금해진다. 이럴 땐 나의 상상력에 한계를 느끼곤 한다. 내가 아는 바운더리 내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라 더 호기심이 인다.


혹시나 쳐다보는 내 눈길이 부담스러울까 봐 자세히 보지는 않고 흘끗 곁눈으로 눈치껏 바라보곤 한다. 혼자 오는 사람들보다 더 부러운 건 여럿이서 함께 오는 사람들이다.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같이 와서 차를 마시고 여유롭게 앉아 환담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부럽다. 저 나이에 평일에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부러운 건지, 라운지 혜택을 누리는 여유가 부러운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둘 다 인듯하다.


나도 그 세계에 잠시 속해있지만 왠지 이방인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들이 입은 부드러운 재질의 옷감에서, 밝게 빛나는 피부에서 뭔지 모르게 새어 나오는 여유로움에서 자꾸 이질감을 느낀다. 나는 운 좋게 어쩌다가 여기에 와 있지만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줄곧 VIP 인생이었고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 손 잡고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는 삶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시간적 여유가 됨에도 불구하고 나는 10분 이상 테이블에 앉아 있어 본 적이 없다. 왠지 동행도 없이 그곳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죄짓는 것 같은 기분이 불쑥 든다. 공짜커피도 마셨겠다 누릴 건 다 누렸으니, 얼른 내 세상으로 돌아가서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아마 나는 근로 노동 없이 사회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게 삶의 임무였던 귀족 체질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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