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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3. 2023

취향 존중

그래서 우리 가족 최애 외식 장소는요

한때는 맛집 찾아다니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맛집 소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채널을 훑어보면서 새로 오픈한 뷰가 멋진 카페나 식당 정보를 보면서 다가오는 주말 외식 장소를 정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정보들을 아예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SNS에서 화려하게 광고하는 식당들을 찾아가 봐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느낌만 받고 돌아올 때도 많았고,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웨이팅만 한참 해야 한다거나 뷰맛집이라는 카페에서는 눈치작전을 펼치며 자리 잡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피곤하게만 느껴졌고 그럴 의욕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우리 가족 세 명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킬만한 식당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편식이 있는 편이라 떡갈비, 불고기, 돈가스, 스파게티 등 외식 메뉴로 즐길만한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남편은 그에 반면 맵고 짜면서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편이라 곱창, 부대찌개, 고기류를 선호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음식을 딱히 가리지는 않지만 주말에 가끔 기분 내러 외식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레스토랑이나 브런치카페를 가는 게 좋다.


이렇게 각자 선호하는 외식 메뉴가 다르다 보니 매번 어디로 밥 먹으러 갈까 고민하는 게 일이다. 거의 90퍼센트 이상은 아이 위주로 메뉴를 고르긴 하지만, 정말 돈가스랑 떡갈비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먹어서 예전에는 웬만하면 잘 먹었던 음식들이지만 이제 남편도 나도 쳐다보기도 싫은 메뉴가 되어버렸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주방은 자연스럽게 보이콧하고 주로 외식하는 날이 되었다. 일주일 내내 가족들 해 먹이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 주말 한 두 끼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 걸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얼 먹을지, 어디 식당을 갈지 나름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어느 순간 주말이 다가와도 그런 논의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형마트나 백화점 푸드코트로 향한다. 그곳은 정말 각자의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돈가스, 카레, 떡갈비 같은 메뉴를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고, 남편은 그날 기분에 따라 덮밥, 중식, 또는 고기류를 선택해서 먹는다. 나는 샐러드나 파스타 같은 브런치 메뉴를 택하기도 하고, 어쩔 땐 팥죽을 먹는다. 우리 가족 중에 나 이외에 팥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팥죽이나 콩국수를 먹으러 가고 싶을 때마다 어쩐지 외로워진다. 아무도 같이 가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포장해 와서 먹기도 하지만 왠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가 버린 팥죽은 커다란 스텐 그릇에 듬뿍 담겨 나와있을 때보다 훨씬 맛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팥죽집이 있는 푸드코트로 가면 그럴 고민할 일이 없어진다.


저번 주말에도 우리는 큰 고민 없이 푸드코트로 향했다. 아이는 카레돈가스 세트, 나는 브런치 메뉴에서 리코타치즈샐러드, 남편은 한참 신중한 고민 끝에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절반씩 제공되는 반반냉면과 왕만두를 시켰다. 한 테이블에서 놓인 각기 다른 특징의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세 가지 음식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별 말없이 각자의 메뉴를 충실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푸드코트의 또 다른 장점은 오후의 애매한 시간에 걸리는 브레이크 타임의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비록 직원의 서빙을 받을 수 없고 스스로 주문해서 받아오는 시스템이며, 맛도 뛰어난 수준을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미슐랭 레스토랑을 자주 다녀본 것도 아니고, 대중적인 평범한 입맛을 가졌기에 별 상관은 없다.


남편은 연애시절에는 데이트할 적마다 레스토랑에 잘도 데리고 다니더니 결혼 후에는 본색을 드러냈다. 사실 파스타, 스테이크는 느끼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데이트 때는 주로 그런데를 가야할 것 같아서 자주 갔을 뿐이라는 거다. 사실 남편이 즐겨하는 음식은 순대국, 갈비탕, 육개장같은 나는 일부러 돈 주고 사먹지 않는 탕 종류의 음식이었다. 가끔 브런치카페에 가서 아보카드 샐러드나 파스타를 먹고 오는 날이면 꼭 나오는 길에 얼큰하게 라면 한사발 먹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억지로 분위기 내겠다고 레스토랑에 다니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푸드코트에 가면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누가 개발한 시스템인지 우리 같이 각자 입맛개성이 뚜렷한 가족 단위 외식인들의 취향이 존중받는 기분을 들게 해준다. 외식 장소 고민할 필요 없이 이번주도 다음주도 매번 가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그 곳, 푸드코트가 우리 가족 최애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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