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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22. 2023

우리 집은 1억 넘는 집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아이

일주일에 한 번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 수업을 해주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습지라는 것을 으레 다 하는 건 줄 알고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엄마표로 시중에 나온 교재 중에 이름 있는 국어, 수학 문제집을 골라서 하루에 한 두장 꾸준히 풀려도 되지만, 사실 7세에 조금 시켜보니 이건 영 아니다 싶었다. 내가 국어, 수학을 몰라서 못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말 "내 자식 가르치는 건 아니다"라는 말을 짧은 경험으로 뜨겁게 깨달았고 쿨하게 사교육 선생님 도움을 받기로 했다. 


30분가량 수업을 마치면 선생님은 항상 나를 붙잡고 오늘 공부한 내용과 아이의 성취도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신다. 처음에는 굳이 이런 피드백을 귀찮게 왜 주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갔는데 일 년 넘게 하다 보니 나도 이제 적응해서 열심히 들어보려 한다. 아이가 어느 부분을 어려워했고, 어떤 부분은 또 잘했는지 알려주신다. 항상 반복되는 말은 성격이 급하고 산만해서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고 대충 풀려는 성향 때문에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 내용 자체가 길어지는 서술형을 어려워하니까 눈여겨서 봐달라고 당부하신다. 


그날은 국어 교재 푼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선생님께서 빵 터지셨다. 화자는 어린 여자아이가 쓴 글이었는데, 아버지가 꽃을 매우 좋아하셔서 집뜰에 꽃나무가 많아 여러 가지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그래서 동네에서 우리 집 별명은 "꽃집"이라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지문과 관련된 문제는 지문에 언급된 "꽃집"처럼 우리 집에도 알맞은 별명을 지어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쓴 우리 집 별명은, "억 원 넘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 집이 비싸니까였다. 

아이 기준에서 1억이 넘으면 아주 비싼 집인 것이다. 


학습지 선생님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답을 아이가 써서 크게 웃었다고 하셨다. 나는 같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귀엽게 생각하면 귀엽다고 봐줄 수도 있긴 한데 왠지 모르게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우리 집이 강남도 아닌데 참 민망하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애 앞에서 돈돈거리면서 돈을 밝혔나?"


평소 부모가 자주 하는 대화를 듣고 자라다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부모의 주관심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남편이랑 돈 얘기를 너무 자주 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의 관심사를 아이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평소 우리의 관심사가 너무나 돈과 부동산이라는 주제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이번 달에 우리 지역 근처에 새로 들어오는 대형 브랜드 아파트 청약이 있는데, 어차피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기도 하지만 행여나 당첨되면 어떻게 할지 김칫국 마시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 얘기를 너무 자주 했나 싶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평수가 굉장히 다양한 편인데, 그중에서 우리 집은 조금 넓은 평수에 속하는데 은연중에 아이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지 친구들에게 너희 집은 몇 평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인지 발달이 조금 느린 탓에 잘난 척하고 뽐내고 싶다기보다는 정말로 궁금해서 순수한 마음에 물어보는 것 같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이가 그럴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서 못하게 다그쳤다. 다른 친구 집 평수 물어보는 것 아니라고, 그건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뭐라고 하긴 했는데 아이는 왜 그게 예의 없는 질문인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돈이 많으면 더 넓고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으니 일단 돈은 좋은 거다라는 개념은 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더 건전하고 건강한 개념으로 인지해갔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가 경제교육을 따로 받은 경험도 없고 어릴 때 늘 엄마는 나에게 큰돈 들어갈 일 있으면 돈 까먹는 기계라고 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고생해서 번 돈을 낭비하시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기도 했다. 먹이고 입히고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시진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들어가는 큰돈에는 굉장히 민감하셨고, 동네 누구 다른 집은 잘 살아서 우리 집과 달리 부자라며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하셨다. 


예전에 나는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 자식 앞에서 너무 돈타령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초2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지은 우리 집 별명이 "사랑이 넘치는 집, 행복한 집, 항상 웃는 집"도 아니고 억이 넘는 집이라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잠시 의문이 들었다. 


돈은 삶에서 중요하고 없으면 매우 불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돈이 인생의 전부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도 많다는 것을 가르치며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나조차도 건전한 방식으로 습득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어렵지만 조금씩 알아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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