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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보는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보는 여자

내 눈빛이 그렇다고 합니다

by 레이첼쌤

어느 일요일이었다. 아들과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더러워진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바빠서 하루 청소기를 안 돌렸더니 금세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싶었다. 곧바로 청소기를 들고 온 집을 헤집으며 청소기를 돌리는 동시에 아이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식탁에 앉아 패드를 보고 있고, 내가 이러든 말든 남편은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청소기를 돌렸다. 6월이지만 벌써 한여름의 기운이 물씬 느껴져서 더위를 타지 않는 나인데도 에어컨을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를 하고 있자니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청소기 돌리는 것까진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은데 돌리고 나면 뒤처리가 더 귀찮아질 때가 있다. 한바탕 돌리고 나면 먼지와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서 더러워진 청소기 바닥의 솔이 달리 부분을 닦거나 떼어내서 물로 씻고 헹구는 작업에 다다를 때면 인내심의 한계가 오곤 한다. 하지만 가족들 다 출근, 등교시켜놓고 혼자 할 때면 그다지 짜증나진 않는데 일요일 오전 아침, 밥 해먹이고 설거지하고 나서 쉬고 있는 가족들 두고 하려니 급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티는 내지 말자고 나를 다잡아보려고 했다. 어제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한동안 노래 부르던 워터파크에 데리고 가서 남편이 온몸을 불태워 열심히 놀아주기도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엔 밥이 잘 안 들어가서 안 먹는 나를 위해 무려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남편 시각에선 주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고,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스타벅스 로고가 달린 커피를 내 손에 쥐어주며 이 정도며 자기 가정적인 남자 아니냐며 자아도취성 발언까지 하는 남편이었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었고 아직 남은 그 커피를 중간중간에 홀짝홀짝 마시며 청소기를 돌리는 중이었으니 이론적으론 크게 짜증낼만 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청소를 거의 다 마무리하려던 시점에, 누워서 폰만 들여다보던 남편이 일어나더니 다가와서 뭔가 말을 걸려고 했다. 내 팔을 잡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고개를 올려서 쳐다봤는데, 이 남자가 하는 말.


또 그 눈빛 나왔네? 남편을 벌레 바라보는 쳐다보는 그 눈빛 말이야.




"읭. 무슨 소리야? 벌레를 쳐다보다니?"


남편을 벌레취급 할 정도로 거북스러운 표정을 지은건 분명히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할까. 혼자서 청소하다 보니 다만 약간의 억울함을 느끼긴 했으나 그렇다고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남편은 다시 한번 단언하면서 한 번씩 내가 벌레 보듯이 자기를 쳐다보곤 한다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들켜버린 걸까. 인지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내 기분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감정을 잘 관리하면 인생 전반이 잘 관리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가기엔 한참 멀었나 보다. 감정을 관리를 잘 못할 거면 숨기기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서투른 것 같다.


주말에 집안 청소까지 도와주는 백 점짜리, 아니 만점짜리 남편을 바라면 욕심인가. 육아만 도와주는 것도 어디냐 싶은데 살림까지 도맡아서 해준다면 그건 너무 나에게 사치이고 지나친 욕심인 건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겉으론 괜찮다 하면서도 내 깊은 속마음은 청소기를 돌리고 다니는 내게 조용히 슬쩍 다가와 청소기를 가로채며 "내가 할게 넌 좀 쉬어."라는 멘트를 날려주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남편의 모습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어도 앞으론 내 표정뿐만 아니라 눈빛 관리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귀한 남편을 벌레 바라보듯 쳐다보는 건 좀 지나치다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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