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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Oct 10. 2023

아이 친구 엄마의 전화를 받았는데

기분이 별로네요?

9살 자녀의 친구 관계 문제로 인해서 아이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아보는 경험은 흔한 일일까. 나는 최근에 이런 전화를 두 번이나 받게 되었다. 이건 아이의 친구관계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인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여전히 퇴보의 길을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썩 기분 나쁠만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음 놓고 지켜보기만 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작년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전에 이 친구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긴 한데, 우리 집에 제집 드나들듯 하교 후에 자주 놀러 오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일로 고민도 많이 하고 혼자 속앍이만 하다가 글로 풀어낸 적도 있긴 한데, 의외로 단순하게 해결되었다. 바로 내 아이가 이 친구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이는 더 이상 그 친구와 놀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친구와 놀고 싶지 않으면 하교 후에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는 일만 줄이면 되는데 아이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했다. 겹치는 학원 시간도 옮겨달라고 했고, 학교에서 그 친구와 마주쳐도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며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따로 놀지는 않더라도 우연히 만나면 가볍게 인사 정도는 하면서 지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끝끝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 듯했다. 내가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교정시켜 줄 수도 없고,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다가 좀 멀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친구 하나가 굉장히 아쉬운 입장이지만 아이가 싫다 하니 내가 억지로 나서서 친구관계를 유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를 한 두 달 정도 지났을까. 동네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면 여전히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뭔가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아이와의 관계 때문일까. 속으로 잠자코 짐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 그 친구 엄마 이름이 떴을 때 사뭇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사실 받아봤자 조금 불편할 것 같아서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약 2초 정도 고민은 했는데, 일단 받기는 했다. 그 엄마는 처음에는 아이들 이야기가 아닌 다른 용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며칠 전에 전화가 잘못 간 거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영문을 물었다. 굳이 전화까지 해서 확인할 일도 아닌 것 같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라 대답만 하고 있었다. 별 일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그 엄마는 슬슬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애들 요새 무슨 문제 있나요? 우리 애가 OO이가 요즘 아는 척도 안 하고 인사도 안 받아준다고 하던데요.."


나는 몰랐는데 아이는 그 친구에게 너랑 학원 시간조차 겹치고 싶지 않아서 학원 시간도 엄마한테 말해서 바꿀 거라고 했단다. 학교 쉬는 시간에 가끔 그 친구가 우리 애 반교실로 놀러 오기도 했는데 아이가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이제 너랑 안 놀 거라고 했다고, 그래서 그 친구가 무척 상처받고 속상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혹시 둘이 크게 싸운 적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 애가 우리 애한테 어떤 큰 실수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크게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둘이 싸웠다거나 누가 누구에게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지도 않다. 아이가 그 친구와 자주 만나면서 겪어보니 스스로가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 이상 놀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내가 보고 느낀바대로 사실을 친구 엄마에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 친구는 가끔 유튜브에서 접한듯한 걸러지지 않은 욕설을 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주변에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친구 얼굴에 침을 뿌리는 행동을 했다. 아이는 몇 번 참고 견디다가 어느 순간 아예 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뭐 아이의 속마음까지 정확히 재단할 수는 없지만 대충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리 그 친구가 싫어졌어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이제 너랑 놀기 싫어 오지 마."라고 말해버리니 친구 입장에서도 당연히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듯하다. 이런 부분은 표현 방식이 좀 서투른 탓이다.  아이에게 너무 그렇게 말하면 친구가 상처받고 속상해 할 수 있으니 조금 돌려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가르쳐야 하는데, 내가 그 부분까지 미처 짚어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그런 상황까지 벌어졌는지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일절 이야기해주지 않기에 더욱더 알기가 어렵다.


이런 부분은 사회성 기술에 있어서 굉장히 복잡 미묘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감정까지 고려하면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약간의 거짓 아닌 거짓말? 도 섞어가면서 에둘러 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한계인 내 아이 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참 어려운 화용술이다.


일단 그 엄마에게 내 아이의 입장과 속마음에 대해 설명했다. 둘이 크게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몇 번 부딪힌 것 같다, 그런 부딪힘들이 조금씩 쌓여서 스트레스가 됐는지 갑자기 안 놀겠다고 선언해서 나도 좀 당황스럽긴 했다, 애들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은데 내 애가 그런 면이 조금 부족하다, 앞으로 나도 더 신경 쓰고 지켜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그 엄마도 애들끼리 친하게 지내가다 멀어질 수도 있고 그러다 또다시 잘 지낼 수도 있으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을 무렵 드는 생각은 "왜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을 하고 있지?"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내가 그 친구에게 직접 상처 준 것도 아닌데 자꾸 비굴하게 변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비굴하다는 말은 좀 과하지만 아무튼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 아이의 표현 방식이 좀 직설적인 것은 맞았고 그 친구로서는 상처받을만한 발언이었기에 그 부분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든 건 맞지만. 그럼 그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말했어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변명한다는 기분 없이 대등하다는 느낌으로 대화를 이끌고 갈 수 있었을까. 그 엄마가 애초에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사과받기 위해서였나? 설마 내 아이가 가해자 뭐 이런 건가?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 기분이 별로라는 사실을 마주했다. 그 엄마는 나와 통화한 이후에 오해가 풀렸을까. 기분은 좀 나아졌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내 기분은 아주 별로다. 학교에서 대놓고 선생님과 친구들 눈에 띌 정도로 싸우거나 언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자기네들끼리 지내다가 서서히 일어난 한쪽에서의 감정 변화와 그로 인한 관계의 역변이다. 엄마로서 내가 대놓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일 같다. 그래도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에둘러 설명하는 법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친구가 네가 그렇게 대놓고 싫다고 앞으로 놀지 않겠다고 말해서 많이 속상해하고 기분이 나빴나 봐. 아무리 OO이가 싫어졌어도 한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많이 슬프고 상처받을 수 있어. 다시 만나면 내가 말이 조금 심했다고 하고 앞으로 인사는 하고 지내자고 말해볼래?"


이게 내가 아이에게 해준 최선의 해결책이다. 초1까지는 덜했는데 9살이 되니 이제 친구 관계는 부모가 나서서 억지로 놀아라, 놀지 말아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친구 만들어주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친구 시켜줄 수도, 역으로 놀지 말라고 해서 억지로 떼어놓기도 참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다양한 일을 겪는다. 어쩌면 그 엄마도 나에게 전화하기 전 한창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물어봐도 별 시원한 답이 나오질 않으니 용기 내서 전화해서 알아보자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 친구도 내 아이도 친구 한 명이 귀하고 소중한 입장이라, 그래서 둘이라도 친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그것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의 친구관계에 대해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쿨내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이렇게 찌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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