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Oct 17. 2023

사람 아주 질리게 만드는 아들 녀석

ADHD 아이와 함께한 주말이란

진심으로 Thank God It's finally Monday! 를 외치고 싶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주말이 다가오는 것이 행복한 여가 시간을 의미하겠지만 나는 아주 그와 정 반대다. 아이와 24시간, 아니 48시간의 주말을 오롯이 붙어서 함께 보내고 나니 아주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어느 정도 자라고 사람구실을 좀 하고부터는 아이와 하루종일 붙어 있어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말도 좀 알아듣고, 의사소통도 되고 하니 그래도 말도 안 통하고 지 뜻대로만 하려던 꼴통시절보다는 훨씬 육아의 부담감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런데 저번 주말 이틀을 보내고 나서 나와 남편은 아주 K.O.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디 여행을 가거나 같이 운동을 하느라 체력이 힘든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시달려버렸다. 한여름도 다 지나고 이제 독감예방접종을 맞이한 요즘 같은 시기에 갑자기 아이는 워터파크에 꽂히셨다.


여름에도 워터파크 가고 싶어 하긴 했지만 한 두 번 다녀오고 물놀이도 하니 금세 만족해하고 더 요구하지 않았다. 최근에 로블록스 게임에서 워터파크맵 같은데 들어가서 즐겨하는 것 같더니 워터파크에 또 가고 싶다고 했다. 요새 실외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는 웬만한 워터파크는 비수기라 다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을 해줘도 어디서 알아냈는지 그럼 실내 워터파크로 가면 된다고 대안까지 내놓았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하도 워터파크타령을 하기에 한 번 검색하는 시늉은 해주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최근에 지은듯한 넓고 깨끗한 시설을 갖춘 실내 워터파크장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당장 거기에 가고 싶다고 외쳐댔다. 돌아오는 주말에 데려가겠다고 했더니 또 혼자 가면 재미없으니까 혼자서는 안되고, 사촌 형아들이랑 같이 가고 싶단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친척 형들 스케줄 되는지 한 번 물어보고 제대로 계획을 세우자고 설득했다. 잠깐은 좀 잠잠해진 듯했다.


그때부터 오로지 머릿속에 워. 터. 파. 크. 밖에 없는지 계속 그 이야기만 하려고 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는 예능 아는 형님도 재미없다고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나와 눈만 마주치면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워터파크 언제 갈 거냐고 물어본다. 몇 번 받아주다가 도저히 힘들면 아빠에게 떠넘겼다. 엄마는 결정권이 없으니 아빠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면 가서 한동안 아빠와 입씨름을 하고 돌아와서 나에게 또 떠넘겨졌다. 한 번 뭔가에 꽂히면 잠도 오지 않는지 토요일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들기 직전까지 워터파크를 외쳐대는 아이를 어찌어찌 겨우 달래서 재웠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뜬 아이가 침대에 누워 가장 먼저 내게 한 말은 역시나 워. 터. 파. 크. 였다. 잠자면서까지 그 생각만 했나 싶어서 정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왔다. 오죽 가고 싶어서 그럴까 하는 생각에 다음 주말에 진짜 부산까지 가보자는 실질적인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의 사촌들은 다들 각자 일정이 있어서 바쁘기도 했고 계절도 계절인지라 워터파크 가려고 부산까지 간다는 데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끼리라도 가자고 했더니 그건 또 싫다면서 징징대기 시작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과 저번 주에 한글날 낀 연휴에 국내 여행도 다녀온 마당에 또 부산 여행을 간다는 건 재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여러 모로 무리였다. 아이에게 다시 한번 알아듣게끔 설명했다.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너도 이해하고 포기하라고, 계절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가까운 시일 내에 워터파크 하나 가자고 부산을 가는 건 무리라고. 아무리 여러 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계속 억울하다면서 엄마, 아빠는 이기적이라는 둥 자기 말은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는 둥, 너무 서운하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해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주말 오후를 워터파크 설전으로 낭비하고 있는 게 싫어서 가까운 동네 뒷산에 등산이라도 가자고 했더니 그것도 싫다고 자기는 워터파크 이외에는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단다. 심지어 워터파크 가기 전까지는 학교도 나가기 싫다고 선언했다. 그럼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워터파크라도 가자고 했더니 거기는 여름에 가봐서 시시하단다. 뭘 어쩌라는 건지 정말. 미치고 환장할 기분이었다. 나도 남편도 지칠 대로 지쳤지만 집에만 그러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아 어르고 달래서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가을 날씨는 적당히 선선하고, 적당한 바람에,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정말 야외활동하기 딱이었다. 하늘도 높고 맑아서 절로 상쾌한 기분이 들게 했지만 여전히 산책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옆에서 징징댄다. 내가 너무 질색하니 이제는 자기가 나중에 커서 워터파크를 설계해서 만들건대 그 안에는 어떤 구조로 만들 거고 미끄럼틀은 몇 개를 둘 거며, 푸드코트 메뉴는 어떤 것들이 있고 입장료는 얼마인지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해 나갔다. 영혼이라고는 일도 없이 그래, 멋지겠다며 대답은 해주면서 듣는 척했다. 워터파크 타령에 과연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하며.


아이에게는 좀처럼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 남편도 계속되는 아이의 징징거림에 언성이 높아졌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아빠가 너 원하는 거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싶은데 어려운 것도 있는 거라고, 왜 이해를 못 해주냐고, 다음에 날 잡아서 꼭 네가 가고 싶은 데 데리고 가 줄 거라고, 좀 기다려줄 수는 없냐고, 네가 가고 싶은 날짜에 가고 싶은 형아들이랑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아이에게 진정으로 토로했지만 아이는 또 자기한테만 화를 낸다면서 억울하다고 울기 시작한다. 아, 이쯤 되니 정말 지친다 지쳐. 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영유아기 시절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면 좀 크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게 만든다. 아주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랄까. 혹시 이 모든 게 그동안 너무 애가 하고 싶은 거 다 들어주려고 애쓴 내 탓일까. 그렇다면 이번에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고 아이로 하여금 가끔은 포기하는 법도 배우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근엄하고  엄한 목소리로 두 눈 마주치며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야. 엄마, 아빠도 네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줄 수 없어."라고 말하니 엄마가 너무 무섭다고 자기한테만 뭐라고 한다고 또 징징댄다.


아이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름 ADHD와 발달장애에 관련된 책을 적지 않게 읽고 공부했기에 그 원인을 알고는 있다. ADHD는 만성적인 도파민 결핍 상태라서 자꾸만 외부로부터의 강한 자극을 원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강한 자극이란, 게임이 될 수도 있고, 만화영화가 될 수도 있고, 유튜브 영상일 수도 있다.


운동이나 독서 같은 긍정적인 활동이 자극제가 되어 도파민 결핍을 충족시켜 준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신나고 자극적이어서 도파민을 만족시켜 줄 거리가 넘쳐난다.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그런 유해한 자극제로부터 아이를 계속해서 보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자칫 방심하고 있다가는 아이는 어느새 보통 아이들보다 현저히 빠른 속도로 뭔가에 중독되고 빠져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상태가 돼버릴 수도 있다.


ADHD는 중요한 화학 물질인 도파민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파민은 활동, 동기 부여, 보상 추구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이다. ADHD가 있는 사람들은 뇌의 도파민 수치가 낮아져 일종의 만성적인 자극 갈구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끊임없는 운동 활동에 대한 욕구, 충동성, 자극 추구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토마스 암스트롱,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아마 워터파크에 가서 노는 게 아이의 결핍된 도파민을 충족시켜 주는 자극제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솔직히 다른 유해한 자극제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물놀이는 건전한 편에 속하기도 하는 활동이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심정적으로 아이의 상태와 원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현실에서 자꾸 부딪히다 보면 한계에 여지없이 부딪힌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 나의 밑바닥. 엄마로서의 유능감. 자존감. 그런 것들이 자꾸 바닥을 친다. 아이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견딜 수 없이 폭발해 버려서 언성 높여 무섭게 혼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뭔가 신나고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을 앞두고 있으면 아이는 감정 조절을 하기 어려워한다. 당장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끝도 없이 그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세 번 네 번, 다서여섯번은 받아주겠으니 이게 열 번, 백번이 넘어가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책으로 읽고 쓰고 배워서 무장한 부모로서 지켜야 할 말과 행동 양식들이 이럴 때면 깡그리 지워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 아이의 징징거림에 지칠 대로 지쳐 감정이 앞서게 되니 이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다음 주말에 근처에 가까운 실내 물놀이장에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놀이시설 사진도 보여주고 동영상도 보여주면서 이렇게 재미난 곳이라고 돌아오는 주에 갈 테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설득반 협박반으로 달랬다. 조금 진정이 된 듯하더니, 이제는 다음 주말이 오기까지 5일이나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게 너무 괴롭다며 어떡하냐고 또 징징대기 시작한다. 너, 이렇게 주말 내내 나를 괴롭혀놓고 학교 안 가는 건 말도 안 돼! 학교를 가야지 왜 가기 싫다는 거얏!


주말 연이틀 내내 멘탈이 탈탈 털리고 맞이한 월요일이 너무나 반갑다. 학교에 가있는 시간은 단 네시 간 뿐이지만 이 얼마나 달콤하고 호사스러운 시간인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또 내내 워터파크에만 꽂혀서 제대로 생활은 했을지 또 걱정은 되었다. 하교하는 길에 본 아이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보였다. 워터파크 이야기도 주말 같은 집요함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원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한풀 꺾인 기세였다. 이래서 학교를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에 적응 못할까 봐 한때 잠시나마 홈스쿨링을 고려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이전 05화 아이 친구 엄마의 전화를 받았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