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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7. 2023

초등맘이 수능 국어를 보고 든 생각

한국사람인데 왜 국어가 이렇게나 어려운지

11월 초순이 되니 여느 때처럼 수능에 대한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학교 출근도 하지 않고 있고, 주변 가족이나 지인 중에 수능을 보는 사람도 없으니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올해 수능 한파는 없다느니 하는 소식은 기사로 흘려듣고 내 일도 아니니 무관심했다. 그래도 수능 전날과 당일에는 쏟아지는 기사들로 반강제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능이 끝난 다음날인 오늘, 포털앱에 들어가니 수학 22번 문제가 킬러 문항이었다는 둥 불수능인지 물수능인지 각 과목별 난이도 분석에 관한 기사들이 떴다. 교육과정평가원장도 참 힘들겠구나.. 변별력도 갖춰야하지, 킬러 문항은 없어야하지, 최대한 고등 교육과정 내에서만 출제해야하지, 그 책임감의 무게는 나같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만 같다.


기사에서 친절하게 캡쳐해서 보여준 수학 22번 문제를 봐도, 학교 다닐 때도 수학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터라 이게 킬러문항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있는 능력조차 나는 갖추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수학과 담 쌓고 살다보니 솔직히 초등학교 경시대회 수준의 문제만 봐도 벌벌 떠는 수준이 되버린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국어 문제가 궁금해졌다. 그래! 작년부터 독서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 내 문해력 테스트 좀 해볼겸 수능 국어 문제 한 번 풀어볼까? 호기롭게 교육과정평가원을 검색하고 들어가니 친절하게도 수능 기출 문항과 답안지가 PDF 파일로 바로 받아볼 수 있도록 링크사이트로 안내된다. 교육부 열일하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손쉽게 다운 받아서 2024학년도 수능 국어를 펼쳐보았다.


그런데.. 첫 지문부터 난항이다. 읽다보니 이거 어디서 많이 느껴본 느낌인데 뭐지? 흰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로다 하는 이 느낌 말이다. <총균쇠>와 같은 어려운 교양서적을 읽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소환된다. 그래도 참고 오기로 풀어보다가 결국 두 장째에서 그만뒀다.



2024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 캡쳐


답안지를 확인해보니 몇 개 푼 문제도 다 맞지 못했다. 왜 이렇게 어렵냐 수능 국어 너라는 녀석은.

수능 공부를 따로 한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한지 십수년이 되었지만 나름 꾸준한 독서로 사고력과 독해력을 어느 정도 다졌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철저한 착각이었다. 2년 째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독서를 하고 있는데 내 문해력은 왜 이모양인가..? 고3 수험생 중에 이 국어를 풀어서 다 맞는 사람도 과연 있을까?


독서 좀 했다는 나에게도 이렇게 국어가 어렵게 느껴지는데 현역 고3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울까.. 풀지는 않고 나머지 문제들을 쭈욱 눈으로 훑어보았다. 철학, 과학, 문법 등 지문 하나가 종이 한 장을 다 차지할 정도로 길다. 이 지문들을 제대로 읽고 푸는 문제 수준은 또 단순하냐? 문제에는 또 따로 읽어내야할 보기가 있고 그것까지 다 이해해야 비로소 문제를 풀 수 있다.


물론 고교 과정을 거쳐 국어 공부를 꾸준히 한 학생들에게는 나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긴 않겠지만, 문득 너무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 아이가 십년 후에 수능을 치를텐데, 그때쯤이면 이런 국어 지문들을 무리없이 소화할 정도로 깊은 사고력과 추론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도대체 독서를 얼마만큼 해야 수능 국어를 잘 볼 수 있단 말인가.


국어에서 맛본 실패감을 만회하려고 영어를 풀어보기로 했다. 영어는 그나마 쉬웠다고 하는데, 나머지는 평이했지만 여전히 3점짜리 문제들은 까다롭고 난해하다. 원문을 구글검색해보니 공상과학에서 나온 음악에 관한 에세이집으로, 워낙 옛날 책인지 아마존에는 새 제품이 없고 중고책만 판매중이었다.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영어 원문 에세이집에서 한 단락을 뽑아 문제를 출제하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2024학년도 수능 영어 원문 책


영어 역시 단어만 안다고 해도 쉽게 풀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휘실력과 문장 구조 분석능력이 있어서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다쳐도 지문에 대한 깊은 이해력과 사고력, 논리력과 추론능력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어려운 수준의 문제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그리고 정확하게 풀어내야 하니, 보통 머리로는 해낼 수 없을것만 같다.


수학이나 여타 탐구 과목도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수능 국어 영어만 풀어봐도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몰려온다. 내 아이를 유학 보낼 것도 아니고 결국 이 땅에서 키워서 우리 나라에서 입시를 치르게 될텐데 10년 안에 수능을 풀 수 있는 독해력을 어떻게 계발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학원이고 뭐고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건 독서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많이 읽는다고 꼭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수능 국어 만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어 잘하는 사람치로 책을 안 읽은 사람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글로 되어 있는 텍스트에 많이 노출되어 열심히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유명 수학강사인 현우진씨도 중학교 때 전교 6등만 하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서 학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안하고 책만 200권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읽고 있는 신문을 슬쩍 보게 되었는데, 한 단락이 눈에 다 들어오면서 쉽게 이해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고력 계발을 강조한다.


 수능 문제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 중 또 다른 한가지는 나의 집중력과 주의력의 한계도 많이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의 빠른 속도에 젖어버린 탓인지 지문을 읽는데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오랜만에 작은 글씨로 된 문항들을 본 탓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영상과 쇼츠가 대세가 되어버린 미디어 시대에 나고 자란 어린 학생들이 이런 지문을 읽어낼만한 집중력이 있을까 새삼 궁금했다.


해결책은 단 두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히고(사실 한 분야만이라도 읽어만 준다면 두 손 모아 감사드릴 지경), 스마트기기에 노출을 최대한 자제시킬 것. 이 두가지만 잘 실천해도 인서울은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런데 이 두가지를 실천하기가 가장 어렵다. 엄마의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오력이 있어야만 가능할까 말까다. 탈학벌 시대가 온다는데, 수능 하나라는 목표를 위해사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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