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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8. 2023

하다 하다 무의식까지 바꾸라니

끝없는 양육지침에 지칩니다

평소에 자녀교육이나 육아에 관한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이라 그런지 인스타나 유튜브를 켜면 그 방면 콘텐츠들이 주로 노출되는 편이다. 워낙 좋은 엄마 기질을 타고나지도 못했고, 느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육아 내공이 요구되는데 한계에 자주 부딪히는지라 습관적으로 그런 교육적 콘텐츠들을 클릭해서 본다.


자녀 양육 관련 저서를 쓰거나 교육 분야 전문가들이 하는 말들을 보고 있자면 유용한 지침들을 하나라도 건져갈 수 있고 그날 하루하루의 마음가짐을 다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우연히 본 릴스 영상에서 본 메시지는 영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제목은 “부모의 무의식이 자녀에게 주는 영향”이었다. 육아 관련 책을 내신 저자와 인터뷰하는 영상이었다. 저자는 나이도 지긋해 보이고 교육 분야 전문가 같아 보였다.


아이가 소심한 경우에 엄마는 성격을 바꿔보겠다고 태권도도 보내고 스피치 학원도 보내고 애를 써보지만 결국 그런 것들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엄마가 자녀를 “소심한 아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무의식이 문제다, 결국 이런 무의식을 바꿔야 아이도 변화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불안감만 계속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 좋다. 틀린 말 하나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의식이라는 건 본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의식적인 수위에서 바꿀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개념 아니냐 말입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 되어서 국어사전에서 무의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무의식
1. 자신의 언동이나 상태 따위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일체의 작용.

2. 심리 자각이 없는 의식의 상태. 정신 분석에서는 의식되면 불안을 일으키게 되는 억압된 원시적 충동이나 욕구, 기억, 원망 따위를 포함하는 정신 영역을 이른다.

<표준국어대사전>


자식을 한 명 낳으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치고 발달단계마다 부모로서 수행해야 할 과업들이 넘쳐난다. 말 안 통하는 신생아기 유아기를 거쳐 말도 좀 통하고 대화가 된다 싶을 정도로 사람 만들었다 싶으면 또 정규 학교 입학과 자식 교육이라는 거대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물적 자본이 워낙 빈약하고, 오로지 사람이 자본이고, 교육만이 살길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동으로 사교육 열차에 탑승한다. 그나마도 아이가 잘 따라오면 반은 성공이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성향이 아니거나, 최악의 경우에 나처럼 “발달장애” 진단이라도 받게 되면 부모의 역할과 무게감이 남달라 질 수밖에 없다.


느리고 부족한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나도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지만 늘 내가 모자라다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아이를 아무리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애써도 당장 눈앞에 또래 아이들과 놓고 봤을 때 말도 안 되게 서툴고, 부족하고, 답답한 모습만 눈에 띈다. 그렇다고 보통의 아이들을 아예 안 보고 오롯이 내 아이만 본다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의 발달을 위해서도 일반 또래 발달 단계라는 기준점이 있어야 내 아이와의 간극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노라면 무의식은커녕 살아있는 의식도 망가지기 십상이다. 눈에 보이는 아이를 향한 말과 행동과 태도조차 차분하고 침착하게 수용하고 지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너무 힘들다. 의식적 차원에서 이렇게 노력하기도 힘이 드는데, 이젠 내 무의식까지 변화시키라고 하니.. 무의식의 본래 정의가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자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 영역까지 바꿔야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하면.. 이건 정말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다. 정말 어디까지 해야 요즘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유명 강사들이 하는 입시설명회를 가 본 엄마들에 따르면 아이의 입시 성공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손꼽는다고 한다. 유기농 식단과 건강 관리는 기본, 자녀에게 적합한 사교육, 경제력이 받쳐준다면 학군지로의 이사 등 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화목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목한 척하면 안되고 진짜로 부모가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가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정서적인 지원이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큼 해내기 어려운 숙제가 또 있을까?


사실 발달장애 관련 책을 읽어봐도 아이의 발달을 도와주려면 가정 분위기가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하긴 한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천이 어려운 게 문제다. 그 교육전문가의 영상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게 아니라서 내가 놓친 부분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녀 양육에 성공하려면 어찌하지 못하는 나의 무의식의 영역까지 바꾸려고 애써야 한다니, 참 한숨만 푹푹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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