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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27. 2023

똥침이 그렇게 재밌니

초2아들의 눈에 띄는 문제행동

한 달에 한 번 약도 처방받고 상담도 받으러 아이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받으러 간다. 매번 예약을 하고 가지만 어찌나 대기실에는 환자들이 많은지 늘 30분 기다림은 필수다. 진료실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면 먼저 원장님이 아이에게 근황과 학교 생활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아이는 대답을 하고, 엄마인 나와의 상담이 이어진다.


늘 매우 간단하고 대답하기 쉬운 질문 위주로 아이에게 던지던 원장님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고난도의 질문을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OO이 성격은 어떻다고들 말해?"

"OO 이는 스스로 성격이 어떤 거 같아? 성격에서 좋은 점은 뭐고,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뭐가 있지?"


내 생각에 약간 메타인지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 아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성격"이라는 말을 듣더니, 요새 꽂혀있는 MBTI 성격 유형에 대해서 아는 바를 이야기한다. 원장님의 질문의 포인트에 약간 어긋나는 듯한 대답이다.


아이의 동문서답에도 잘 반응해 주셨다. MBTI도 중요하긴 한데, 평소에 나 스스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자꾸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면 자기 성격 파악도 되고 장점을 늘려갈 수 있다고 말해주신다. 평소에 아이에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주된 고민거리가 뭐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나는 서슴없이 똥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반에서 다른 친구들이 똥침하고 노는 걸 재미있게 관찰했는지, 어느 순간 "똥침"에 너무 꽂혀서 자꾸만 해대는 버릇이 들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막 하지는 않는데 가족이나 친척, 센터 선생님처럼 자신이 좀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막 해댄다. 특히 가장 큰 피해자는 나와 남편이다. 그만 좀 하라고, 재미없다고, 또 아프다고 기분 나쁜 티를 내도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이런 하소연에 원장님은 아이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그걸로 장난치면서 노는 걸 보고, 그게 또래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판단하고 정말 재밌고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남들이 싫어하는 줄 잘 모르고 하는 행동이며, 바른 행동에 대한 기준과 눈치가 약한 아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평소에 내가 아이를 대할 때는 정말 짜증 나고 얘 진짜 왜 이러냐 싶은 기분이 드는데 원장님의 정제되고 전문화된 언어로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한 달에 한 번뿐이고, 짧은 한 순간에 끝나버리니 뒤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고 감정적으로 격화되곤 하지만, 그래도 전문가 의견을 꾸준히 듣는다는 게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또래 초2들도 똥침을 하거나 짓궂은 남자아이들끼리는 심지어 남의 중요 부위를 살짝 터치하고 도망가면서 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상황과 눈치를 보고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안다. 해도 어느 정도 먹힐만한 아이들에게, 해볼 만한 분위기에서, 가끔만 하는 식이다. 그런 상황적 판단과 눈치, 혹은 센스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그저 어려서부터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사회성의 일환이다. 안타깝게도 내 아이에게는 그런 능력의 습득이 늦어버린 탓에 눈치 없이 똥침을 하고 다니는 문제행동이 발생하게 되고, 행동 수정을 지속하지만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어제 사회성 그룹 수업을 할 때는 똥침을 그만하라고 못하게 했더니 구석에 가서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한창 목을 킁킁대는 틱 증상이 있었는데 요즘엔 입술을 뜯는 버릇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게 있는데 머릿속에 정리가 잘 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면서 입술을 자꾸 뜯는다.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도 입술을 뜯는다. 아이의 불안하고 긴장되는 감정이 그대로 몸으로 표현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이 밖으로 표현이 되어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예 표현을 하지 않으면 겉으로 알 수 없으니 혼자 속으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 수조차 없기 때문에 차라리 더 나은건지도 모르겠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하는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에도 굉장히 취약하다. 그냥 재미로 하는 게임인데도 폭탄을 들고 끝말잇기 단어 게임 같은 걸 하면 너무 긴장하는 탓에 아예 단어 연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에 어휘력을 위해서 책을 많이 읽히려고 하는데도, 긴장감이 올라오면 그것이 전혀 발휘가 안되나 보다. 이 아이에겐 편안한 감정과 안정된 정서가 발달에 매우 중요한 필수 조건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평소에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워낙 회피해 버리는 아이라서 밤에 불 끄고 누웠을 때 편안한 잠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넌 똥침이 그렇게 재미있어? 그런데 한 두 번 해야 재미있지, 계속 싫다고 하는데 자꾸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쁜 거야.. OO이도 엄마가 여러 번 말해서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거야?"


아이는 한참 대답을 못하더니 이내 눈물을 흘린다.


"아는데,, 알고 있는데 잘 안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어. 내 뇌가 그러라고 시키는거 같애."


조절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나도 알고 있다. 아이도 알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이미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와버리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 자꾸 반복되니 자기도 괴롭다. 아이 마음이 많이 다치지 않게, 적당히 때를 봐가면서 나도 조절해서 지도해야겠다. 사실 어른인 나도 감정 조절이 힘든데, 아이는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똥침은 이제 봐가면서 하자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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