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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09. 2023

오늘도 인스타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지

세상엔 나보다 행복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작년에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파격적으로 줄여버렸다. 각종 인플루언서들을 포함해서 몇 백 명은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너무나 그 피드들에 정신 팔려 있는 순간이 많다는 걸 자각했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10개 내외를 빼고는 큰 마음먹고 다 삭제해 버렸다. 내가 왜 그들의 화려한 일상을 시시각각 확인하면서 내 시간과 주의력을 소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남는 시간에, 할 거 없는 자투리 시간에 한 번씩 보는 건데 무슨 상관이야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의 화려한 인생을 엿보면서 나 자신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도 든 다는 걸 자각하니 더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팔로우하는 계정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깔끔하고 예쁜 플레이팅과 먹음직스러운 엄마표 요리를 자랑하는 계정들, 화려한 패션 감각을 돋보이며 파리의 노천 카페에 앉아 무심히 던져놓은 명품백과 함께 동대문 보세옷을 파는 쇼핑몰 계정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것 같은 엄마들의 육아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계정 등 하나같이 다들 나보다 잘 나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말 줄이고 줄여서 책 소개하는 북스타그램 몇 개를 제외하고는 다 없애버렸다. 매일 보던 그 피드들이, 안 보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던 그 피드들을 보지 않아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차피 나와 알고 지내는 친구도 지인도 아니라서 나만 안 보면 끝인 것들이다.


그래서 요즘엔 팔로우하는 피드들이 워낙 없다 보니 한 번씩 인스타앱을 켜면 검색창을 눌러서 랜덤으로 보이는 계정창을 한 번씩 훑어본다. 요즘 트렌드 파악도 할 수 있고, 내가 놓쳤던 뉴스나 가십거리들도 찾아보고, 생활에 필요한 꿀팁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여주는 계정들도 있어서 재미있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긴 하지만, 심심하면 나도 모르게 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최근에는 집에서 아이 영어 노출을 꾸준히 시키고 있다 보니 알고리즘이 어떻게 귀신같이 나의 관심사를 파악했는지 엄마표 영어 계정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웬만큼 매력적이지 않으면(?) 굳이 팔로우하지 않으려고 한다. 팔로우하는 순간, 매일 그 피드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시시각각 인스타를 켜게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자제한다.


그런데 계속 추천으로 올라오는 엄마표 영어 계정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한참 모자라보이고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살다 온 엄마, 강남의 유명 영어유치원 수석 강사 출신 엄마, 외국계 회사에 회계사로 일하면서 엄마표 영어를 실천하는 엄마.. 정말 화려한 이력의 엄마들이(게다가 다들 어리고 예쁘다) 아이를 위해서 영어그림책 정보, ESL 학습 사이트 공유, 책육아 정보, 영어 전집 등 각종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 주는 계정들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어떤 계정은 너무 유혹적이어서 팔로우하고 말았다. 어리고 예쁜 엄마가 두 아이와 일상에서 영어로만 대화하면서 어찌나 야무지게 엄마표 영어를 해내고 있던지 정말 팔로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어찌나 자연스럽고 유창한지, 그냥 원어민들 대화 같았다. 그 계정을 하나 팔로우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추천 피드들이 순식간에 올라온다. 몇 개 들어가 봤다.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한  멋진 집에서, 엄마가 제공해 주는 영어책과 한글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릴스들이 어찌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한참을 정신 못 차리고 그런 계정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어? 나는 왜 이렇게 아이에게 못해주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 엄마처럼 아이랑 일상에서 영어회화를 실천하지 못할까? 우리 애는 벌써 아홉 살인데 영유아인 얘네들보다 한참, 정말 너무도 한참 뒤처졌는데 어떡하지? 어떻게 이렇게 애 키우는 집이 깨끗할 수 있어? 저 뒤에 보이는 냉장고는 삼성 비스포크일까 엘지 시그니처일까? 식탁은 어디 거지? 애들 보여줘야 할 전집이 이렇게나 많구나? 어? 전집 공구를 하네? 나도 하나 사야 할까?


의식의 흐름은 이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결국 한참 후에 앱을 끄게 되었을 때 남는 건, 그들이 제공해 주는 깔끔하고 유용한 정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간 추락한 내 자존감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건, 세상엔 정말 나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나도 이렇게 못할 거 있나 하는 마음에 릴스도 만들어서 한 번 올려볼까 했는데, 딱히 올릴 게 없다. 내 일상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제공할만한 유용한 정보나 인사이트도 한참 부족하다. 별 볼일 없는 것도 잘 포장해서 올려서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스킬로 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런 브랜딩 능력도 없는 것 같다. 그런 고로 나는 인스타형 인간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브런치앱을 켜서 보고 나면 내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구나, 다들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힘들게 사네, 나도 저런 점은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 브런치에서도 잘 나가는 작가님들은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지만 이상하게도 상대적 박탈감 따위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절로 납득이 될 뿐이다.


하루에 10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언어발달이 느린 아이를 데리고 뒤늦게라도 엄마표영어를 시작해서 나 나름대로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도 큰 거부감 없이 따라와 주고 아주 조금이나마 영어에 흥미와 관심이 생긴 것 같아서 흐뭇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인스타에서 마주한 그 화려한 엄마표영어 계정들을 몇 개 보고 나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한없이 작고 쓸모없게 느껴진다. 겨우 이 정도하고 있으면서 만족한 거니? 그 엄마들 봐봐.. 얼마나 대단해? 아이들을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인스타에 홍보까지 하고..


아.. 당분간 정말 인스타앱을 켜고 싶지 않다. 나 그냥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래. 더 이상의 현타는 그만 당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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