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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Dec 04. 2023

한동훈 장관과 처복

현실부부 밥상 이야기

엊그제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한동훈 장관 아내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맥락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날은 장관님의 아내분이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사를 본 터라 맞장구를 살짝 쳐 주었다. 법무부장관까지 할 정도면 본인도 훌륭한 학벌에 똑똑한 건 당연하겠지만 아내도 같은 서울대 동문에 그에 못지않은 스펙과 직업을 가진걸 보니 정말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싶었다.


평소에 정치, 사주, 유명 점쟁이 유튜브를 즐겨보는 남편은 나의 뇌리를 듯한 한마디를 내던졌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사람이 그러는데, 한동훈 장관 사주에 처복이 아주 엄청나대."


차기 대권주자로 나올 가능성도 있고, 앞으로도 정치계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다고 하면서 그 아내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관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열심히도 덧붙여주었다.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별다른 리액션이 생각나지 않아 "그래?" 하고 말았다.

뭐 그사세에 나오는 주인공들만큼 나는 대단한 집안도, 내세울 것도 별로 없는 지라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왠지 그냥 넘어가기가 싫어서 대뜸 허허실실 웃으면서 받아쳤다.


"한동훈 장관만 처복 많은 거 아니야. 진짜 처복 남은 남자가 바로 자기야. 봐봐. 나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아내 만나서 이렇게 이쁜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잖아. 자기처럼 처복 많은 사람이 어딨어~~?"


평소에 이렇게까지 능청스럽게 굴지 않는데 그날따라 더 뻔뻔하게 들이댔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사세 사람들 이야기에서 느끼는 허탈감 혹은 박탈감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발달 문제로 나와 남편의 속을 애태우고 있고 나는 그런 아이를 돌보느라 커리어가 끊긴 채 이렇게 지내고 있지만, 장관 아내에 비하면 나라는 사람은 내세울 거 하나 없지만, 그래도 왠지 이날만큼은 오버하고 싶었나 보다. 나의 이런 능청에 남편은 자기 사주에는 딱히 처복이 많다는 말이 없었다고 정색하며 반발한다. 나는 더 오버하면서 거기 점집이 잘 못 본 거라고, 아니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안 나는 거라고, 다시 보면 다르게 나올 거라고 단언했다.


남편도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질 수 없다는 태도로 대뜸 나에게 와서 말한다.


"너야말로 사주 보면 남편복 엄청나다고 나오지 않아? 너 지금 봐봐. 나 만나서 이렇게 누리면서 잘 살고 있잖아...어쩌구..저쩌구.."


갑작스러운 공격에 모른척하고 그릇 정리와 설거지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끝까지 쫓아와서 빨리 인정하라고 성화다. 남편복 많은 거 인정하라고 왜 대답을 안 하냐고.. 그래, 그래 우리 서로 여기까지 하자. 서로 처복, 남편복 많다는 걸로 인정하고 끝내자고. 오케이? 아웅다웅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더니 아이가 웃으면서 달려와서 그만하라고 말린다. 진짜 싸우는 게 아니라 반장난이라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챈 것 같다.


사실 지금보다는 피가 더 들끓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만약 남편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나는 화를 내거나 비꼬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유명인 이야기라도 남편 입에서 어느 누구는 처복 많아서 잘 나가고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그럼 그런 잘난 여자 찾아내서 결혼하지 그랬느냐, 집안 따지고, 학벌 따져서 결혼하지 왜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여자랑 결혼해서 이렇게 평범하게 사느냐"며 더 기분 나쁘게 해댔을 것 같다. 그래도 세월이라는 게 주름과 흰머리만 안겨주는 건 아닌지, 나도 몰랐던 능청스러움이 어디선가 튀어나왔고 남의 잘난 아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한동훈 장관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어쩌다가 서로 자뻑 칭찬으로 마무리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로 어이없어하면서도 한바탕 웃으며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평소 같으면 남의 칭찬이나 남편 지인 중 잘난 아내들 이야기에 의기소침해지거나 할 말이 없으니 떨떠름하게 반응하곤 하는 나다. 


나이 든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전 같으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적응하며 살다 보니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에 대한 끝 모를 질투심은 조금 유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생겼다. 이렇게 정신승리하고 살면 되지. 잘 나가는 정치인, 부자들 이야기에 부러워말고 내 일이나 열심히 잘하고 살자. 그게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복이 차고 넘치는 삶이 되는 길이라는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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