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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come 말고 embrace 하기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이전에 내가 쓴 글 중에서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민망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결국 이겨내고 극복해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고 말 것이다."라는 요지의 문장을 쓰면서 나는 "극복"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쓸 때는 몰랐는데 발행하고 보니 한 문장 내에 "극복"이 두 번이나 들어갔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문장이 조금 우스워지는 줄도 모르고 어쩌자고 극복이란 단어를 이렇게 많이 쓴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즐겨보는 블로거 중에 해외에서 금융계통 회사에 근무하며 거주하고, 아들을 셋이나 낳아 키우는 워킹맘이신 분이 있다. 외국에서 회사 생활과 육아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블로그 기록까지 꾸준히 하며 유익한 글을 업데이트해주고 온라인 영어 스터디 모임 리더까지 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 사람인데 나와는 참 다른 세상을 살구나 싶고 배울 점도 많은 것 같아 애정 하는 블로거다.


꽤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했는지 몇 년 전 글도 아주 많은데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래전에 첫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한 걸 보게 되었다.

정말 나는 그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긍정적인 면에서 충격 말이다.


그분은 첫 임신했을 때 산전 검사에서부터 다운 증후군 의심 소견을 받았지만, 감사하게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낳았고 큰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으면 특수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의 장애는 부모의 불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크게 불행하지도, 크게 슬프지도 않으며, 이를 극복해야 할 역경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고.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장애가 불행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이라고 여긴다고. 아이의 막연한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만 말고, 그저 남들 키우듯 자연스럽게 키우고, 인격 형성에 중요한 가치관과 올바른 생각을 가진 아이로 자라게 해 주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무슨 큰 부담과 사명감을 가지고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의무를 할 뿐이라고."




이 글을 보고 나는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나는 왜 이런 마음의 여유가 이토록 없었지?


아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이 한 몸 불살라, 내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아이를 정상 발달로 만들어놓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매일 다짐하고, 실행하고, 좌절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내 사이클이다.


보통 아이들이랑 자연스럽게 잘 놀지 못하고, 다가가지 못하고, 서툰 모습을 보이면 그때마다 남편에게 일일이 이야기하면서 우울해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아이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힘으로 모든 걸 다시 정상으로 원상 복귀시키려고만 하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 블로거 분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그분은 임신 상태일 때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미리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이런 경고나 아니면 주의라도 미리 받았다면 이 모든 여정이 조금이나마 쉬웠을까.



문득 영어 단어 두 개가 떠올랐다.

overcome - 극복하다, 남을 이기다.

embrace - 받아들이다, 수용하다


overcome의 영영사전 의미에는 defeat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남을 패배시키고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나는 아이가 가진 어려움을 무슨 악령의 화신이 아이의 몸에 들어와 괴롭히고 있다고 여기고 이를 어떤 식으로든 이 못된 놈을 엄벌하고, 물리쳐버리겠다는 자세로 임했다.

어떻게 하면 이 악령을 쫓아내서 내 아이를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건 옳지 않은 생각이다.

아이의 어려움은 악귀 신에 씐 것도, 없애고 타도해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 어려움도 그 자체로 내 아이의 본질이고, 순수한 모습이며, 이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다.

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극복하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나를 매일 단련시키고 채찍질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embrace는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는 뜻도 있지만, 물리적으로 누군가를 안아주고 포옹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껴안고, 포옹하며, 그대로 받아줄 것.


그저 꾸준히 공부하고, 부모로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며, 올바른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수고하면 될 일이다.


자꾸만 정상 발달의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선망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고 지금 내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는 듯 읽고 있던 책에서 귀한 문장을 발견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인생에서는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알아보는 능력도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그 능력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생은 모든 게 예상 밖이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조절하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에 괴로운 건지도 모른다.

<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 도조 겐이치>


인생은 모든 게 예상 밖이고, 어차피 내가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


너무 발버둥 치지 말고, 이제는 정말 overcome이 아닌 embrace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고, 사랑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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