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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연장해야 할까

adhd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1년의 휴직을 냈다.

처음 아이를 출산할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는 시기까지 3년의 휴직을 보내고, 그 후로 계속 근무하다가 몇 년 만에 다시 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7세에도 아이는 사회성 부족과 자존감 저하라는 발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서 아이에게만 매달리며 치료에 집중하면 뭔가 모든 게 원상 복귀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올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언어지연 진단을 받던 그 시점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아이에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수만 번 들었던 생각이다.


올해 휴직을 내면서 나는 목표를 세웠다.

오롯이 아이를 위한 휴직이니 나에게 전업주부로서 허락된 이 귀한 시간 동안 아이에게 최고의 양육 환경을 제공하리라 다짐했다. 식단 관리도 하고, 동네 친구들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평일 오후에 둘이 데이트도 맘껏 하고, 혹시나 아이가 힘들어하고 등교 거부하면 굳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되어서 무척 기쁘고 설레기까지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3월에는 정말 손이 많이 갔다. 학교라는 새로운 교육기관에 적응시키고, 오후 방과 후와 학원 스케줄을 짜고, 아이와 어울릴만한 성향의 남자아이들을 물색해서 집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내가 휴직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었다. 이모님이나 친정엄마에게 부탁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모두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면 다른 선생님들도 보통 휴직을 낸다. 짧으면 한 학기에서 길게는 나처럼 1년의 휴직 기간을 갖는다. 그만큼 보통의 아이들도 초등학교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 부모의 손길과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업무 분장에 대해 한창 논하던 시기에 나는 아이 초등 입학으로 휴직하게 된다고 하니 주변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다. 정말 좋겠다며, 아이 등교시키고 그동안 못했던 취미 생활도 하고, 여유도 즐기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겉으로는 그러마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씁쓸했다. 나는 아이를 등교시켜놓고 필라테스 하러 다니고, 브런치나 먹으러 다닐 여유가 없는 처지였다. 집에 주문만 해놓고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하고 있는 발달 장애 분야 책들을 얼른 다 읽고 공부하고 실천해서 아이가 정상 발달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확한 내 휴직 사유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나는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집안 정리를 하고 그 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같이 브런치 먹으면서 평일 오전의 한가로움을 만끽할 친구가 있지도 않다. 친한 사람은 거의 다 같은 직종이라 휴직 중이 아니라면 당연히 근무하느라 만날 시간이 없고, 가깝게 지내는 동네 엄마들도 등교시키고 운동을 하거나 여러 개인적인 스케줄로 바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 전후로 아이의 하교 시간이 되면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된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간식을 먹이거나 함께 놀아주다가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온다. 1시간도 채 안되면 학원 끝날 시간이 되고 다시 데리러 갔다가 집에 와서 먹을 것 챙겨주고 센터 수업이나 수영장에 데리고 간다.

엄마가 일하느라 낮 시간에 챙겨주기 어려운 초1 아이들은 이 모든 일정을 혼자 소화하는 것 같다. 스스로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가고, 가까운 또 다른 학원으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가거나 중간에 시간이 남으면 놀이터에서 놀기도 한다.


같은 교사에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휴직을 하지 않았다. 휴직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두 명이라 이미 육아휴직을 많이 쓴 탓에 근무연수가 들쭉날쭉해진 탓에 휴직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일단 휴직하고 쉬면 몸은 편하지만 다시 복직할 때는 다시 신규로 돌아가서 밑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히 크다. 여러 이유로 내 친구는 3월부터 아이 스스로 등교시키고 오후에는 빈틈없이 학원 스케줄을 짜서 적응시켰는데, 의외로 아이가 잘 해내 주어서 여태 잘 다니고 있다.


친구에게 내년에 휴직을 또 연장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더니, 짐짓 놀라면서 2학년 정도 되면 혼자 다닐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의아해한다.

"아직 학교에서 교우관계에서도 힘들어하는 면이 있고, 같이 학원을 다닐만한 친구를 사귀지도 못해서, 나라도 오후에는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듯이 대답하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물론 친구관계가 서툴러서 힘든 점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에 대해서 네가 발 벗고 나서서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교실에 가서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과 학원 거리가 가까우니까 방과 후에도 혼자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내년까지 휴직하고 내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아이의 부족한 사회성이 갑자기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휴직하고 내가 집에 있으면 좋은 점은 아침에 직접 밥을 해먹이고, 여유롭게 아이의 등교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과 오후 시간에 간식도 챙겨주고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모든 동선에 함께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손가락이 골절돼서 태권도, 피아노 학원도 쉬고 있는 때는 오후 시간 내내 나와 함께 있는데, 내가 일을 한다면 이 시간에 봐줄 사람이 마땅히 없다. 시댁도 친정도 멀리 사니 가끔 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상황도 허락되지 않는다.


내 아이도 나 없이 혼자 스스로 다닐 수 있을까?

아침에 등교는 집에서 혼자 걸어가지만, 하교할 때는 엄마가 나와 주라고 한다. 그리고 학원에 갈 때와 올 때 모두 내가 함께한다. 놀이터에 아는 또래 친구들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가서 함께 어울리면 좋으련만,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다가가지는 못한다. 때로 나에게 대신 가서 놀아주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결정적으로 내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복용 중인 adhd약의 부작용으로 식욕부진과 불안증이 있는데 학교 급식시간에는 약기운이 돌아서 입맛이 아예 없어 거의 못 먹고 온다는 사실이다. 급식 시간이니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가긴 하지만, 몇 입 먹고 버리는 듯하다. 약기운이 떨어지는 오후 3시 정도가 넘어가면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밥을 차려달라고 한다. 정말 배를 곯았던 사람처럼 맛있게 밥을 먹는다. 그리고 불안증이 심해져서 집에서도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서워할 때도 있고, 엄마가 눈에 안 보이고 다른 방에 있으면 계속 찾는다.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엄마한테 집착하지 싶었는데, 약을 복용하지 않은 날에는 이런 증상이 덜하니, 확실히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부작용들이 학교 생활이나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는 정도도 아니고, 내가 좀 나서서 적극적으로 신경 써주면 되는 정도라 다행이다. 그리고 약으로 인해 주의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나아진 건 명백하기 때문에 부작용 무섭다고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보통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adhd 약은 최소 2-3년은 복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고, 경험자들 이야기를 찾아보면 중학교 때까지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을 아이 돌본다는 핑계로 계속 휴직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편은 무조건 내가 휴직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아니, 아예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올인하기를 원한다. "네가 벌어봤자 얼마나 번다고. 너 일한다고 아이 제대로 못 돌보고 놓치는 게 더 많아. 지금은 우리 아이한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야. 애도 올해 확실히 많이 좋아졌잖아."


틀린 말은 아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긴 하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이 등교시키고 집 청소하고, 살림하다 보면 왠지 모를 허전함과 공허함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든다. 생산적인 일은 못하는 인간으로 이렇게 남편, 자식만 챙기고 바라보며 사는 게 과연 정답인지 모르겠다. 내 통장에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니 서운하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일해서 번 돈이 천천히 통장에 쌓여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보람차다. 생활비는 거의 남편 카드로 해결하긴 하지만 가끔 여행 숙소 예약비나 양가 경조사 비용은 내가 낼 게하며 별생각 없이 썼는데, 휴직하고 버는 돈이 없으니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 다 남편에게 의지해야 한다. 내 남편은 아내가 돈 버는 것보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와 자신을 케어해주는걸 더 원하는 사람이라 나에게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때로는 내가 눈치가 보인다.


내 직업 없이 전업주부로 평생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살림과 육아라는 만만치 않은 노동의 경제적 대가 없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만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면 나는 좀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리고 내 자아가 점점 없어지고 작아질 것 같다. 나는 직장 생활로 인해 자아실현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승진을 목표로 워커홀릭이 되어 탁월한 업무 능력을 갖추겠다는 야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으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쯤 학교는 이런 업무로 한창 바쁘겠지, 얼마나 정신없을까 하다가도 그 바쁜 와중에 동료들과의 커피 한 잔과 수다가 주는 위로가 그립다. 사고 치고 속 썩이는 학생들 이야기, 선생님들은 안중에도 없는 관리자 험담, 업무 처리의 미숙함으로 실수한 이야기 등을 나누는 시간들이 한 때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매번 찾아오는 월요병에 시달릴 것이고 몸은 좀 더 힘들더라도, 다시 그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워킹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 놀란다. 작년에 일할 때는 하루라도 빨리 휴직해서 아이에게 올인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가 싶다.

사람은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이전에 몰랐던 소중함을 깨닫게 되나 보다. 복직해서 일하다 보면 주말과 방학만 기다리는 월급 노예가 되겠지. 주부로 지내다보니 "월급노예"도 부러울 지경이다.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일을 해서 경제적 대가를 받는다는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아이 낳고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최근에 다시 자기 일을 시작하나 동네 엄마가 있는데, 좀 피곤하지만 즐겁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 그동안은 낮에 뭐하고 살았나 싶다며 "힘들지만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모르겠다.

복직을 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아이와 나도 이내 적응할 것이다.

휴직을 하게 된다면 나는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기꺼이 집에 있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 것이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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