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Jan 27. 2024

샤넬클래식이 천사백만 원이라고

샤테크가 필요한 때인가

친구가 프러포즈를 받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한 프러포즈 이벤트에는 예쁜 꽃 장식과 풍선들 사이에 샤넬 상자들이 고이 놓여있었다. 와.. 이런 이벤트를 해주는 남자친구라니. 그동안 괜찮은 남자 고르느라 결혼이 늦어진건가. 


우리들은 애 낳고 육아하느라 늙어갈 때, 안 그래도 동안인 외모 관리 잘하면서 30대를 즐긴 만큼 즐기고 사십 대가 오기 전에 결혼에 골인하는 친구의 선택을 마음속 깊이 찬양했다. 그 정도 이벤트를 준비하는 남자라면 뭐 따로 만나보지 않아도 친구에게 잘해줄 것 같고, 스펙만큼이나 괜찮은 신랑감처럼 보였다.


친구와 만나 결혼준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제 십 년 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내 결혼식 준비과정을 떠올리느라 애를 썼다. 상견례니, 예물이니, 예단이니 신혼여행이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다 치러냈는지 기억이 통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단 하나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너무나 설레었고 신났다는 사실이다. 시집가는 게 내 인생 최고의 이벤트인 것 같아서 스스로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재미있었다. 친구도 그런 감정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게 눈에 보였다.


친구에게 프러포즈 때 받은 샤넬 박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샤넬클래식백을 받았다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결혼식 필수 예물품 아닌가.. 나는 바보같이 그 당시에 샤넬백을 예물로 선택하지 않았다. 양가에서 예단비를 넉넉하게 챙겨주었음에도 6백만 원이나 하는 샤넬백은 그때의 나에게 너무 과해 보였다.


설사 그 정도 쓸 수 있는 돈이 있어도 그런 넘사벽 백은 사지 않겠다는 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다. 그보다 훨씬 저렴하고 트렌디한 가방을 2백만 원대에 샀는데, 지금은 유물이 되어버렸다. 너무 유행을 타는 아이템이었고 지금은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다.



그냥 나도 내 주제 생각하지 말고 샤넬백으로 할걸.. 조금 후회되는 부분이다. 여태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흔템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가치가 두 배이상 올랐을 텐데. 괜히 아쉽다.


재테크 책을 몇 권 찾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건 소비를 향한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돈이 돈을 번다고, 자산이 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투자를 해야지 끝도 없이 유행하는 소비를 따라가다 보면 절대 종잣돈을 모을 수 없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출을 통제하고 여윳돈을 꾸준히 모아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산이 될만한 걸 사야 한다고 해서 나도 안팎으로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노력 중 하나로 이제 명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했다. 실제로 거의 일 년 가까이 통 큰 소비는 자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부러운 마음이 들만한 화려한 삶을 사는 인플루언서도 다 끊어버렸다. 그것은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가 프러포즈로 받은 샤넬백과 샤넬 반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불현듯, 그동안 잘 관리해 왔던 소비욕구가 불쑥 배 밖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가방 참 영롱하고 이쁘구나. 나도 갖고 싶다.. ㅜ







아는 언니를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원래 쇼핑을 워낙 좋아하고 잘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만났을 때 언니의 어깨에는 하얀색 샤넬백이 들려 있었다.


샤넬의 상징인 블랙도 아닌 화이트라니! 그 하얗게 빛나는 그 샤넬백이 그날따라 왜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던지. 가방과 함께 무심하게 디저트를 고르는 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아함 그 자체였다.


가방이 사람을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건지. 그 언니가 원래 그렇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가진 건지 헷갈렸다. 주변 사람들 중 하얀색 샤넬백을 가진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더 충격이었다. 부럽다. 그런 가방을 살 수 있는 언니의 경제력도 능력도. 그리고 나도 갖고 싶다..









샤넬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한창 명품 소비에 열을 올릴 때 이후로 몇 년 만에 들어가 보는 사이트였다. 블랙핑크 제니가 대표 모델이라니. 제니는 샤넬 제품이라면 뭐든 다 가질 수 있겠지. 가방 가격을 검색해 보고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무려 천사백만 원이라니! 9백팔십만원이라니! 이거 제정신이야? 십 년 전 6백만 원하던 가방 가격에도 깜짝 놀랐는데 그동안 이렇게나 많이 올라버렸다. 인플레이션 효과인지 아니면 올리고 올려도 잘 팔리니 끝없이 올리는 명품계의 장난질인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몇 달간 책으로 유튜브로 보고 배우면서 나름의 내공을 쌓고 재테크의 기초를 잘 실천하고 있다고 나를 칭찬했는데, 가까운 지인들이 든 샤넬백에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내가 아무리 갖고 싶다고 해도 큰 이벤트가 아니면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이라 괜히 더 아쉽다. 이제 절약해서 자산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어 놓고 샤넬 홈페이지까지 들어가서 훑어보고 있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현타가 온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으로 안 봐야 하는데, SNS 속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지인들이 샤넬백을 내 눈앞에서 들고 유혹하니 당할 재간이 없다. 물욕에 이렇게 쉽게 굴복하고 마는 나는 재테크로 성공하긴 그른 인간인가 보다. 쯧쯧.. 투자나 재테크 책 한권 찾아 읽으면서 다시금 욕망을 억누르고, 마음을 가다듬어야할 시점이다. 




<사진 출처: 샤넬 공식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죄책감과 자기 연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