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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30. 2024

다니는 미용실에 호구 잡힌 느낌

몇 년 만에 옮길 결심

집 근처 미용실을 애용한 지 5-6년째다. 미용업계 프랜차이즈이고 매장도 넓고 깨끗하고 직원도 많은 편이라 별 고민 없이 선택한 미용실이다. 더군다나 유아기 시절 아이는 머리 자르는걸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여기 직원들은 그런 아이를 붙잡고 커트해 주는데 친절하게 도움을 줬다.


초반에 담당 디자이너가 몇 번 바뀌다가 나중엔 한 명에게 정착하게 되었는데, 친절하고 성격도 좋고 실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굳이 미용실을 바꿀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다른 미용실도 요새 다 비슷한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금액권을 끊어야만 할인도 들어가고 혜택이 더 많아서 30만 원, 50만 원 이런 식으로 결제해야만 했다. 큰 금액이라도 결제해 두고 사용하면 할인 혜택이 있으니 더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그 방식에 순응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두피스파"라는 새로운 두피 관리 프로그램을 들여와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영업을 당하고 와서, 자기 두피 상태가 워낙 안 좋으니 이 스파를 한 번씩 받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두피스파는 따로 금액권을 끊어야 하고 상당히 비쌌다. 거금이긴 해도 한 번 끊어두면 10개월 정도는 꾸준히 받을 수 있을 거 같다기에 그것도 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갈 때마다 커트 후에 두피스파를 받고, 나도 가끔 기분전환하고 관리받고 싶을 때 가서 두피스파를 받았다. 가끔씩 미용실 전용 샴푸, 린스 제품까지 홍보하길래 그것도 사서 써봤는데 가격만큼이나 제품의 질도 괜찮았다. 그렇지만 너무 비싼 편이라서 한 두 번 사고 그냥 일반 마트 제품을 쓰기로 했다.


다른 집도 미용실에 이렇게 큰 금액을 쓰는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따로 염색이나 파마를 하지 않기에

남편과 아들 커트할 때 아니면 돈 쓸 일도 별로 없어서 금액권은 금방 줄지 않고 오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담당 디자이너가 매우 친절하고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게 해주는 느낌이라 언제 가도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디자이너가 건강상 문제로 장기간 쉬게 되었고, 우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바뀌었다. 이 지점 대표원장이라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사실 이 대표원장에 대해서 아주 초기 시절 들은 말이 있었다. 이 미용실에 있다가 옮긴 다른 디자이너 말로는 처음부터 미용 전공도 아니고 프런트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기술을 배우고 디자이너로 전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사람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머리 XX 못한다. 실력 없다"라고 표현했다.


동료에게 그런 평가를 들은 디자이너에게 우리 가족 머리를 맡기게 되어서 처음엔 좀 많이 찝찝했다. 그래도 남편과 아들에게 마루타식으로 커트를 한 번 시켜보니, 뭐 나쁘지 않았다. 워낙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나쁜 평가를 들은 건 한참 지난 몇 년 전 이야기니 시간도 많이 지났고 대표원장까지 된 걸 보면 그간 실력을 많이 키웠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몇 번 더 다닐수록 점점 바뀌게 되었다.

아이 머리를 자른 날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자세히 볼 수없으니 자르고 집에 와서 아이 머리를 보았다. 뒷목 쪽에 머리가 누가 봐도 삐뚤빼뚤했다. 나는 미용 디자이너도 아니고 전문가가 아닌 데다가 눈썰미도 없다. 그런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머리가 좀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남편에게도 물어보니 좀 삐뚤어져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날따라 미용실에 손님이 매우 많고 정신이 없었는데, 바빠서 그랬나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 후에 내가 머리를 자를 일이 있어서 갔다. 대표 디자이너나 직원들이나 다들 친절하고 잘해주기는 했다.

문제는 역시 실력.. 옆머리나 뒷머리야 내가 잘 확인할 수 없으니 기존 스타일대로 잘라달라고 해서 거의 비슷한데 앞머리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넓은 이마를 커버하는 나로서는 앞머리 스타일이 매우 중요한데, 뭔가 층이 맞지 않고 드라이할 때마다 이상하게 잘 안 됐다.


이 정도 실력으로 어떻게 대표원장이 된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다시는 이 미용실에 가고 싶지 않은데, 아직 남아 있는 금액권도 꽤 되고 게다가 그 비싸다는 두피스파도 아직 여러 번 남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이 미용실에서 우리 가족을 그냥 호구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

몇 년째 아무 컴플레인 없이 매번 금액권을 끊고 큰 금액을 내고 정기 스파권을 끊으니까 우리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큰 마음먹고 쓰는 금액이고, 그만큼 받는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고 담당 디자이너와의 오래된 친분과 그의 실력을 믿고 지불한 돈이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정도 돈을 써가면서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에 내 머리를 이 모양으로 자른 걸 보면, 약간 대충 잘랐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어차피 고정 회원으로 잡혀 있는 고객이니 그냥 자른 거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남편에게도 토로했더니 자기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고 이 참에 다른 데로 옮겨볼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했다.


여기서 드는 강한 의문은 어떻게 해서 그 정도 실력으로 대표 원장 자리까지 갔냐 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것이다.


"실력이 없어도 존버하면 결국 승리한다.."


사실 그 미용실 스텝 직원도 굉장히 자주 바뀌고 디자이너도 고정으로 몇 명 있긴 하지만 그 대표원장만큼 오래 근무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실력이 별로 없어도 1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고 그중에 나이도 가장 많으니 연차도 쌓이고 자연스럽게 지점 대표까지 올라가게 된 것 같다.. 고 감히 추측해 본다.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에 맞는 또 실력이 괜찮은 디자이너를 만나 우리 세 가족 모두의 머리를 맡기고 싶은데, 또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생각보다 미용실은 자주 가는 곳이라 거리도 좀 가까웠으면 좋겠고..


무딘 성격에 변화를 별로 싫어하는 성격은 나도 남편도 비슷해서 웬만하면 옮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택의 홍수 속에서 사는 요즘 세상에 또 다른 큰 선택을(그것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한다는 것은 편치 않은 일이다.


여러 가지 귀찮음과 게으름 때문에 그냥 가까우니까 다니던데 다니자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에는 정말 큰 마음먹고 끊어내야겠다. 이런 우유부단함 때문에 "어차피 우리는 항상 올 수밖에 없는 고객"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건지도 모른다. 조금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변화를 단행해야겠다!






이 일로 특별한 삶의 교훈도 얻었다. 동료들에게 실력 없다고 은근히 무시당하던 사람도 버티고 버텨 대표까지 올라간 걸 보면, 실력과 내공이 좀 부족하더라도 한 자리에서 버티고 버티면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도 정말 수업도 대충 하고 업무 능력도 민폐 수준인데 승진 가산 점수는 기똥차게 잘 챙겨서 승진을 해내는 교사들이 간혹 있다. 아무 능력 없는데 오로지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독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구도 소기의 성과를 얻어낸다는 게 씁쓸한 현실임을 알게 됐다.


뭐, 나는 이런 영역을 추구한다는 건 아니고.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무능력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잘 안되는 것 같아서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 역할도 그 대표 원장처럼 정말 버티고 버텨 "존버"해내면 결국 승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엉뚱한 발상인가?


다 포기하고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고, 이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고 다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미 들어설 길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계속 버티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해내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나도 버텨야지. 그러면 어디 명함 내밀만한 대표직은 못 맡더라도 나 참 잘 살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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