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아예 말을 말든가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때아닌 충고를 들었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어렵게 말을 꺼내는 듯했다.
우리는 늘 즐거운 이야기만 나누는 편인데 무슨 심각한 일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꺼낸 첫마디는,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진짜 친동생 같았으면 진작 말해줬을 텐데. 자기가 뭘 모르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야..”
하더니 그때부터 나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이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의 실수들을 하나하나 꼬집어서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 불만들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반박하자고 하면 다 할 말이 있었고, 내 사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받아준 게 너무 많은데 이제는 말을 해야지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지인이 친언니였다면 나도 할 말 다 하고 따박따박 대들었을 것 같다.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들인데, 그럼 그때 그때 말해주면 되지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제 와서 정색하고 화를 내냐고, 내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그런지 여태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건 맞지만 그런 걸 놓쳤다고 해서 이게 그렇게 혼내듯이 말할 정도로 큰 일이냐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족과 아이들 관계가 얽혀있고
앞으로 안 보고 살 사이도 아니라서
일단은 그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내가 잘 세세히 챙기지 못한 거 같다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과
언니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좀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내가 안일했던 건 인정하겠다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하고 마무리했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니 화가 난다.
아니 그건 대화가 아니라 한쪽의 일방적인 포탄공격 같은 나에 대한 평가와 조언이었다.
나도 여태 수년간 여러 가지 면에서 배려한다고 배려했는데 그건 다 쓸모없는 노력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나의 노력과 헌신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고 그녀가 신경 쓰는 부분은 그렇게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단 말인가..
너무나 사적인 이야기라 갈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대로 참 억울하다.
남편한테 피를 토하며 내 입장을 성토했다.
나도 그동안 한다고 했는데 다 의미 없었나 보다고,
진짜 서운하다고,
그런 불만이 있었어도 좀 참고 돌려서 좋게 말해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지인에게 해야 할 말을 괜히 남편에게 쏟아냈다.
한참 시간을 두고 감정을 좀 사그라뜨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각자 입장이 달라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고 느끼지만
자신이 배려하는 게 더 크다고 느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늘 그렇듯 주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고생하고, 내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을 각자가 내면화해오고 있던 것은 아닐까.
당일에는 너무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상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조금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서운하게 했던 부분들이 있다면 쿨하게 인정해 버리자.
자꾸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그 또한 어설픈 자기 방어일지도 모르니까.
누군가 사람은 참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동물이라고 말하던데, 진짜 맞는 말인 것 같다.
더욱이, 나처럼 그게 잘못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는.
이렇게 갈등도 겪으면서 우리의 관계는 앞으로 더 단단해질지 소원해질지 모르겠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고 할 말 다하면서 살지 못하고 뒤에서 이렇게 넋두리나 하는 쫌 못난이 좀팽이 같아서 이런 내가 싫어진다.
아무리 고쳐보려고 해도 잘 되질 않으니..
나는 도저히 누군가에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며 내 속마음을 낱낱이 전해줄 깜냥이 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인가?
인간관계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