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Feb 06. 2024

그건 자본주의 친절이었나

가식 아니면 진심?

대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본래 나는 준비성도 없고 계획 세우는 것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죽어도 자유여행을 떠나는 종족이었다.


아이들 여러 명과 성인들까지 대가족이 움직이다 보니 패키지가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냥 데려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여행은 영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당분간은 이런 식의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생각하기로 했다.


패키지는 가이드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특히나 한창 말 안 듣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급히 화장실을 찾아 나서는 등 은근히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아이들이 영유아기는 아니라 손이 덜 갈 것 같지만 그래도 해외다 보니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흔히 패키지 가격에는 가이드 팁이 따로 있는데 보통 1인당 50불 정도였다.

높은 환율을 감안하면 적은 가격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대가족이라서 일인당 계산해서 모두 다 합치면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그래도 모두를 더한 금액에 일인 금액을 더 추가해서 가이드에게 드렸다.

아무래도 성인들만 데리고 다니는 여행보다 어린이들이 있으면 가이드 입장에서 더 성가실 수도 있으니 조금 신경 써주십사 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이번에 만난 가이드는 우리가 따로 팁을 드리기 전에도 상당히 밝고 친절한 성격인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일일이 각자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팁을 추가로 더 드리고 나서 가이드의 행동은 한층 더 친절해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메뉴는 어땠냐고 입맛에 맞았냐고 자꾸 물어보고, 초등학생 잼민이스러운 이상한 질문과 개그 코드도 다 받아주면서 정성을 다해 대답해 주는 모습이 돋보였다.

가족들에게 진짜 팁을 더 주니까 더 친절해진 게 확실하다며 돈이 힘이 이렇게 큰 거라고 했다.



여행 내내 친절한 미소와 배려는 계속되었다.

너무 지나칠 정도의 배려는 부담스러운데, 딱 선을 지키면서도 아이들과 계속 소통하려는 자세가 돋보였다.



내 눈에 가장 띄었던 점은, 어린아이들에게도 계속해서 존댓말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보통의 어른들은 처음 보는 어린이들에게라도 곧장 반말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도 아이 친구들을 만나면 바로 반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모르게 그냥 반말이 나온다.


그런데 그 젊은 가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써주면서 대화를 했다.

나는 이게 굉장히 큰 태도의 차이라고 보았다.

어린이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작지만 큰 차이를 보여주는 태도다.



가이드들은 여행사에서 받는 기본급이 없다고 들었다.

팁이나, 옵션 관광행사나 쇼핑센터 관광 등으로 떨어지는 돈을 버는 게 주된 수입원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최대한 패키지 고객들에게 뽑아낼 수 있을 만큼 뽑아내야 자기 수당이 될 수 있는 거다.

그쪽 업계일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최대한 고객들의 비위를 맞춰서 이 나라에서 많이 쓰고 가게 뜸한 게 그들의 임무일지 모른다.



그래서 돈을 쓰는 부모의 아이들에게도 잘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물론 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아이는 가이드랑 헤어지기 싫다며 울기까지 했다.

아직 나이에 비해 정신적 성숙도가 좀 떨어지고 감정조절도 어려워하는 아이라 그러려니 했다.

달래느라 힘들었는데 가이드도 아이를 안아주면서 굉장히 아쉬움을 표했다.

다행인 건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조카들도 울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아쉬워하긴 했다.


단 4일 함께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가이드와 정들 수 있다니 참 신기했다.


일상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이란 보통 친척이나 학교, 학원 선생님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른들 중에 딱히 엄청나게 다정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이드라는 처음 만난 어른이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했으니 남다른 추억이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나도 덩달아 크게 아쉬워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이틀은 힘들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적응이 안 되는 건지, 짐정리하다가 지쳐서 힘든 건지 모르겠는데, 자꾸 베트남에서 본 풍경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아주 대반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빠가 우리 몰래 가이드한테 200불 상당의 팁을 따로 주었다는 사실을..


여행 내내 우리한테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가 따로 챙겨줬는데 왜 그랬냐고 하니까, 젊은 사람이 타지에 와서 열심히 일하는 게 보기 좋고 아이들한테도 잘하길래 그냥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긴 하는데..

그렇다면.. 뭐야..?

그 가이드.. 돈 받고 나서 그렇게 친절한 거였어..?!

이게 웬 반전이란 말인가.


나는 참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 저렇게 미소 한 번 잃지 않고 아이들을 계속 쓰다듬어주고 쓸데없는 말 다 받아주고 우리가 가이드 한 번 잘 만났다 하면서 흐뭇해했는데..

설마 따로 큰돈 받아서 그런 거였나?

갑자기 혼란스럽다.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돈을 주지 않았어도 친절했겠지?

그 가이드의 진심에 자꾸 의문이 든다.


진심이었든, 가식이었든, 돈 때문이었든 간에 아이들이 좋아했으니 뭐 아무렴 어떠랴.

지금도 아이들은 가이드 삼촌 진짜 좋았다고 또 만나고 싶다고 타령인데..

애들에게 그거 다 자본주의 친절이었다고 말해주지는 못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친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