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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26. 2024

어쩌다 사랑받는 며느리

시어머니가 교회 권사님일때

전에도 딱히 미움받는(?) 며느리는 아니었다. 둘째이자 막내 며느리인 나는, 특별히 잘해드린것도 없지만 또 엄청 못하지도 않는 보통의 며느리인것 같다. 제사나 명절을 크게 치르지 않는 시대기에, 며느리를 집안 행사에 노동력 투입용으로 여기지도 않고 우리 시댁도 그런 집안 중 하나다. 시댁일이라고 해봐야 가끔 제사나 명절 때 일 년에 두세번 설거지 한 바탕 하는게 전부다. 어머님은 평소에 방문해도 별다른 일은 시키지 않으신다.


내가 며느리로서 하는 도리라면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연락을 드리는게 전부다.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놓지는 않지만, 연락 안한지 이주일째가 되간다 싶으면 그냥 내가 먼저 전화를 드린다. 딱히 할 말도 없으니 식사 하셨어요라고 질문을 드리면서 간단한 대화를 하다가 끊는다. 그마저도 며느리에게 먼저 전화가 오면 시부모님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일일것 같아 먼저 전화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딱히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내가 대단히 무언가 노력해본 적은 없다. 애 키우면서 나 살기 바쁘고,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시어머니께서 부쩍 나를 이뻐해주신다는게 대놓고 느껴진다.

이유인즉슨,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이기적인 사유로 아이를 교회 주일학교에 데리고 나갔다. 사회성 발달 검사 항목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학교같은 공식 교육기관 외에 교회나 종교기관 같은 사회적 모임에 참여중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 문항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아, 또래들이 모이는 교회 주일학교 같은데 다니면 애가 학교 교육 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사회성을 좀 키울 수 있겠구나."


나는 초등 시절 이후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성인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 정말 기뻐하셨다. 시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시고 굉장히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이시다. 성경 통독도 여러번 하셨고, 성가대 활동도 몇 십년째, 봉사도 많이 하시는 등 어머님의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는 교회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안타깝게도 시어머니 이외의 모든 시댁 가족은 교회를 매우 싫어하는 무신론자다. 그도 그럴것이 젊은 시절, 교회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어머님 때문에 아버님과 갈등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갈등의 원인이 교회였으니 자식들도 모두 교회에 회의적이 된 것이다.


게다가 집에 새로 들어온 식구인 두 며느리마저 비기독교인이었으니 어머님은 상당히 실망스러워하셨다. 하지만 지나가듯 한 두번 표현하셨을뿐 억지로 교회에 나가보라는 말은 아버님 눈치도 있었기에 단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랬던 집안 분위기에서 막내 며느리가 손주까지 데리고 교회에 나갔으니, 얼마나 기쁘셨겠는가.

 

교회를 싫어하는 시아버님도 손자가 교회 다니면서 전도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이쁨도 많이 받고, 앞에 나가서 율동도 하고 발표도 하는 사진을 보시더니, 썩 긍정적으로 여기시는 듯 했다.


교회에 나간 직후부터 어머님은 만날 때마다 은행에서 갓 받은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 수십장을 챙겨주시면서 아이 헌금으로 쓰라고 주셨다.


이번 명절에는 큰 손주 몰래 우리 아이에게만 세뱃돈을 두 배나 넣어서 두둑히 챙겨주셨다. 절대 비밀이라고 윙크를 살짝 보내시면서.


주일에 한 번 예배 참석하는게 전부인 평범한 신자이지만 나도 예배에 참석하다보니 보고 느끼는 것들, 궁금한 것들도 생겨서 어머님과 공통적인 화제로 나눌 수 있는 대화소재가 생겼다. 교회 문화나 성경말씀 등 대충 아는 것도 좀 모르는척 하면서 물어보면, 환한 표정을 알려주신다.


집안에 어머님과 같은 편이 두 명 늘어나서 너무 행복하시는게 느껴진다. 남편도 교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엄마가 워낙 좋아하는게 눈에 보이니 은근히 아이가 주일학교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좋아하는지 한 번씩 자기 엄마에게 어필한다.


이번 명절에는 예배 참석해야해서 평소보다 좀 일찍 집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환영하신다.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나.

권사라는 직분까지 가실 정도면 오랜 세월 성실한 신자셨을텐데, 가족 중에 아무도 그 길을 반기는 사람이 없었을테고 그 이야기를 꺼내는것조차 반갑지 않은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님도 그간 삶이 주는 고통에 적응하고 견뎌내며 사느라, 뭐 하나 붙잡고 싶은 마음에 종교에 의지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회 이야기만 꺼내면 목소리 톤이 달라지시는 어머님은 전에도 나에게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주신것 같지만 최근에는 그 빈도와 횟수가 훨씬 더 늘었다. 너의 그 노력 덕분에 아이는 주님의 믿음 안에서 더 건강하게 자랄거라면서, 의심하지 말자고 내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주신다.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그저 꿩먹고 알먹는 기분이다. 아이에게도 여러모로 유익하고, 나도 예배 드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시어머니의 이쁨까지 덩달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일석이조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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