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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27. 2024

청소 이모 비용 아끼기 프로젝트

남아도는 노동력 적극 활용하기

신생아인 아이를 거의 혼자 밤낮으로 돌보면서 나는 집안일까지 하기가 힘에 부쳤다. 그저 하루종일 신생아를 돌보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하는 일만으로도 녹초가 되기에 충분했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나와 남편 먹을 음식 준비는 간신히 하고 뒷정리까지는 할 수 있었는데, 도저히 청소는 할 여력이 없었다.


신혼시절, 아이가 없었을 때에는 날 잡고 남편과 둘이 두 시간 정도 분담해서 집중해서 하면 집청소는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청소라는 집안일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꽤나 사치였다. 차라리 청소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필 남편은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에 전력을 다하던 시절이어서, 나는 청소 이모를 한 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고, 그 당시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업체에 의뢰하면 회당 3만 5천 원 정도에 서너 시간 정도 대청소를 해주었다. 투자할만한 비용인 듯했다.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아이를 출산한 친구도, 지금껏 쓴 돈 중에 청소이모에게 쓴 게 가장 아깝지 않았다며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정도는 마음 편히 외주에 맡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때부터 주 1회 청소이모를 쓰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집안일이건 육아건 거의 도와줄 수 없는 처지라 다 내 담당인데, 청소라도 도움을 좀 받으면 내 일이 좀 줄어드니 짜증도 줄어들 것이고(?) 여러 가지로 윈윈이라고 여겼다. 해가 지나면서 5천 원씩 상승하기는 했지만, 평수를 넓혀 이사하기 전에는 청소비용이 크게 부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그에 따라 청소비용도 올라가다 보니 상당히 부담이 되는 금액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출근하던 때에는 당연히 치러야 하는 고정비용으로 여겼다. 남편은 여전히 바빴고, 나는 일과 육아 모두를 책임져야 했다.



아이 치료라는 영역까지 육아의 큰 축으로 추가되면서, 한가하게 청소나 하고 있을 시간은 더욱 부족했다. 집안일 제쳐두고 아이랑 계속 상호작용하면서 대화하고 몸놀이하고 보드게임하고 책 읽어주면서 한시라도 뒤쳐진 발달을 따라잡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일을 쉬고 내가 집에 있게 되면서 슬슬 이 청소 비용이라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항상 하던거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청소 이모가 오는 시간에는 집을 비워두고 카페에 나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혼자 아등바등하면서 집청소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게 훨씬 더 기회비용 측면에서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더 이상 맞벌이가 아닌 우리 집 가정경제를 고려했을 때 좀 지나친 지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거의 10년 동안 하던 건데 갑자기 청소이모를 안 쓰면 너 혼자 감당할 수 있겠냐면서 그냥 계속 하던대로 하라고 했다. 그 의견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만 좀 더 고생하면, 한 달에 거의 3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몸 좀 힘들더라도 좀 참으면 되는데, 본전 생각이 자꾸 났다.



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제 아이도 클 만큼 컸겠다, 스스로 제방 청소기 돌리는 정도는 할 수 있고, 더군다나 로봇 청소기 돌리는 일을 좋아한다. 주말에 남편과 아이 그리고 내가 합심해서 한 시간 반 정도만 집중하면 대청소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서 먹이면서 말을 꺼냈다. 맛있는 밥 먹고 힘내서 우리 청소하는 거야! 남편과 아이 둘은 듣는 둥 마는 둥 별 반응이 없었지만 철저히 청소시킬 영역 분담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준비를 해갔다. 로봇청소기에 붙일 바닥걸레와 물걸레 등을 준비하고 나는 가장 어렵고 내켜하지 않을 것 같은 화장실 청소 준비를 했다.



사실 청소 그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다. 청소기를 구석구석 돌리고, 물걸레로 닦는 일쯤은 집중해서 하면 금방 끝나기도 하고 엄청나게 고된 작업은 아니다.



정작 청소가 힘든 건, 다 쓴 더러워진 걸레와 청소기 헤드를 분리해서 빨고 뒷정리를 하는 일이다. 그것만 누가 해준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청소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부분이다. 청소기와 걸레 닦는 업무를 남편과 아이에게 맡기고 나는 화장실 청소와 그 외 뒷정리 일을 해나갔다.



중간에 아이가 하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다. 남편은 이제 씻으려고 했는데 화장실 청소를 해버리면 어떡하냐고 했다.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럴 거면 둘 다 청소하지 마! 놔둬, 내가 혼자 다 할 테니까..!"


어릴 적 화난 엄마가 가족들에게 김 씨들끼리 잘 먹고 잘 살라며, 지겨운 김 씨들 하면서 저주를 퍼부을 때 쓰던 그 말투로 가족들에게 화를 냈다. 순간 나 자신에게서 친정엄마의 모습을 똑같이 느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나는 화장실 청소가 뭐 좋아서 하는 줄 아는지, 가족들이 좀 도와주면 돈도 아낄 수 있고 금방 끝낼 수 있는 청소를 굳이 쓸데없는 비용을 써가면서 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게다가 아이도 이제 좀 컸겠다, 자기 방 청소쯤은 스스로 할 나이가 되었고, 집안일을 분담해서 시키면 책임감과 독립심도 키울 수 있고 이래저래 장점이 더 많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는 걸, 어린아이도 배워야 한다. 누군가 항상 자신을 위해서 집을 청소해 두고, 이불을 정리해 두고, 빨래를 해서 차곡차곡 개켜놓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혼자 살면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이 모든 일을 스스로 혹은 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빽!하는 느낌으로 화를 냈더니 남편도 아이도 금방 꼬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할당된 영역 청소를 끝냈다. 혼자 하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릴 일을 그래도 가족들 노동력을 투입하니 한 시간 반이면 끝이 난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을. 그동안 너무 돈 낭비했다 싶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당연하게 외주로 맡겨왔던 일이다. 막상 내가 맡아서 하려니 조금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특히 화장실 청소나, 평소에 손이 도통 가지 않는 구역은 계속 이모님이 맡아서 해주는 게 편했다.


전처럼 남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가족들과 합심해서 청소를 하고 나니 우리가 사는 공간을, 우리 스스로 정리하고 깨끗하게 되돌려 놓는 일도 상당히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지만 청소하고 나니 뿌듯함도 들고, 서로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격려도 하게 된다. 사실 청소하지 않고 주말에 그냥 쉰다고 해서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는다. 여행이나 특별한 곳 외출 같은 큰 이벤트가 있다면 그 시간이 아깝겠지만 평소의 주말 오전은 빈둥거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말 아침밥을 든든히 잘 챙겨 먹이고 열심히 맡은바 구역 청소를 시켜야겠다. 돈도 벌고, 책임감도 기르고 이보다 더 좋은 가정교육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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