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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19. 2024

아침부터 운동하는 아내한테 한다는 말이

그 입 다물라

여독과 명절 후유증 그리고 몸살까지 겹쳐서 2월은 정말 내내 운동을 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6시 알람에 자동으로 눈 뜨고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빅씨스 언니의 화려하고 눈부신 뉴욕 배경과 몸매를 감상하며 열심히 덤벨을 들었다 내렸다 했는데. 그게 다 한낱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동안 도저히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보통 낮이나 저녁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의 운동을 하는 편인데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방학 중인 아이랑 같이 한 몸이 되어서 늦잠을 늘어지게 하루 이틀 자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다. 삼일, 사일 늦잠을 자기 시작하니까 몸도 그 게으름에 금세 적응이 되어서 도저히 7시 이전에는 못 일어날 것 같았다.


남편은 자기 출근 준비할 때마다 거울을 보고 열 운동하는 나를 보며 그렇게 발악한다고 몸짱이 될 줄 아냐는 눈빛으로 비웃곤 했다. 그런데 몸살에 피곤에 찌들어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고 본인 출근 배웅조차 못할 정도로 잠에 취해있는 내 모습은 더 꼴 보기가 싫었는지 일부러 자는 사람을 깨우기도 했다. 남편이 깨워도 도통 정신을 못 차리고 더 잘 거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악에 바친 사람처럼 매일 아침 홈트한다고 오버하던 일상에서 잠에 취한 게으름뱅이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나 내일아침부터는 전처럼 일찍 일어나서 꼭 운동할 거야."


굳게 다짐하고 잤지만 그다음 날은 다르지 않았다.

또 늦잠을 잤다.

도저히 몸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게으름뱅이가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또 선언했다.


"내일 아침엔 꼭 일어나서 운동할 거야!"


"힘들걸..?!"



남편은 이미 무너져버린 내 의지와 깨져버린 루틴을 비웃고 있었다.


흥, 내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잠에 들었지만 역시나 아침 일찍 울리는 알람 소리가 너무 싫었다. 정신은 어느 정도 들었지만 한동안 이 시간에 쿨쿨 잠만 잤더니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한동안 뭉개고 있다가, 일어날까 말까 수십만 번 고민만 하다가, 거의 3-40분을 허비하고 나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 시각도 이미 한창 운동하던 때에 비하면 뒤늦은 시간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에 옷을 갈아입고 운동 영상을 틀었다.



7시에 일어나서 홈트 하는 데에 이렇게나 큰 의지력이 필요하다니. 한심하다 한심해. 그래도 다시 시작한 게 어디냐 싶어서 나 자신을 마음껏 칭찬해 주면서 열심히 빅씨스 언니의 유려한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 했다.


한창 운동하고 있는데 의외로 운동하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란듯한 남편이 나타났다.

진짜로 마음먹고 일어났네? 라며 칭찬의 한 마디라도 해줄 줄 알았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열심히 운동해서 어린 남자 꼬실라고..?"



어휴.. 할 말이 없다 정말.



내가 이 악물고 그 싫어하는 운동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아프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건강해야 이 집안도 굴러가고, 애도 돌보고, 살림도 하고, 조금이라도 아파서 골골대면 모든 게 엉망이 돼버리는데, 그래서 이렇게 없는 체력 긁어모아서 운동 좀 해보겠다고 발악하는 건데 할 말이 그것뿐이냐 정녕.


"수준이 너무 낮아서 정말 내가 해 줄 말이 없다.."


일침을 가해주었다. 뭐, 딱히 부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아니면 본인도 인정하는 바인지 별 말이 없다.


명명백백 부정할 수 없는 40대에 들어선 내가, 운동을 하고 체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를 대자면 수십, 수백 가지다.

이제 운동은 하면 좋은 우아한 취미가 아닌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 돼버렸다. 운동을 해서 몸짱이라도 되보겠다는 얄팍한 단꿈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2퍼센트 정도다. 그냥 좀 자주 안 아프고, 뭘 해도 덜 피곤하고, 일상에서 생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다니고 골프장에 다니고 아니면 등산이라도 다니면서 더 체계적으로 체력을 키우고 싶지만 그것도 사치다. 아침에 일어나서 멋진 언니 보면서 하는 홈트가 나에게 유일한 활력소다.


운동을 하지 못한 지난 잃어버린 3주는 재충전의 시간이었다고 믿고, 다시 시작하자.

내일은 알람 소리에 미적대지 말고 일어나서 꼭 오운완 할 거다.

어린 남자를 꼬시는 것보다 훨씬 더 나에게 중요한 인생의 과제는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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