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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1. 2024

역시 돈은 쓰는만큼 들어오는거야

로또 4등 당첨됐답니다

정식 명칭은 학교교육과정설명회인데 학부모총회라 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튼 학부모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남편 앞에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했다.



"학부모총회에 뭐 입고 가지?"


"입고 갈 옷 없으면 한 벌 사든가.."



학부모총회 간다고 옷을 사다니, 그런 어리석은 소비는 당치도 않지라고 코웃음 치면서 웃어넘겼다. 입을 옷이 없는 건 아닌데, 단지 새 옷이 없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쇼핑몰에서 기본 아이템 가끔 산거 빼고는 백화점에서 정식으로(?) 쇼핑한 지가 정말 한참 되었다. 쇼핑 자제하면서 열심히 산 나 녀석을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다.



주말이 되자 남편은 백화점 상품권 있는 거에 보태서 진짜 봄옷 좀 사라고 한다. 의도치 않게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녔더니 안쓰러워 보였는가 아니면 학부모총회 때 기 좀 살리라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자꾸 재촉하기에 못 이기는척하며 평소 애정하는 브랜드 매장으로 향했다.



눈여겨봤던 카디건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굳이 간절기 아우터 하나를 더 사란다. 이래놓고 뒤에서 이번 달 마이너스라고 죽는소리하기만 해 봐라.. 괜히 매장 직원들 앞에서 허세 부리고 싶은 건지, 상품권이 있어서 여유가 생긴 건지 맘에 드는 옷 두 개 다 사라기에 진짜로 사버렸다.



문제는 그 직후부터였다. 괜히 산거 같아서 자꾸만 후회가 됐다. 사실 두 번째로 마음에 든 그 아우터는 너무 포멀 해서 출근할 때나 어울리지 평소에 입고 다니기는 좀 부담되는 스타일이다. 출근도 안 하고 집에 있는 내가 입을 일이라고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쁘기야 하지만 아웃렛도 아니고 백화점에서 사기에는 과한 지출인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쓰였다.



집에 오는 내내 남편한테 괜히 샀다고, 어울리는 하의도 없는데 그냥 반품하고 싶다고 징징댔다. 생각해 보니 소재만 살짝 다르지 그 옷과 비슷한 스타일과 색감의 옷이 집에 있다. 왜 나는 매번 엇비슷한 느낌의 옷들에 끌리는지 모르겠는데 두께감만 약간 다르지 크게 차이가 없는 옷이 있는 것이다.


급기야 남편은 이미 상품권 보태서 사버렸는데 복잡하고 뭘 또 반품을 하냐며 그냥 입으라고 짜증을 낸다. 아무래도 어울리는 치마나 바지를 또 사야 할 거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더니 체념한 표정이다.



"아, 그 돈이면 애 치료비며 사교육비에 보태고도 남을 텐데 괜히 쓴 거 같다.."



예전에는 옷 사주면 방방 뛰면서 좋아가지고 난리 더니, 이제는 반대로 더 화만 내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면서 남편은 혀를 끌끌 찬다.



"그동안 쇼핑 진짜 많이 안 했잖아. 찝찝해하지 말고 그냥 기분 좋게 입어."



좋은 말로 달래주길래 겉으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마음은 영 내키지 않았다.

진짜 내일이라도 매장으로 다시 쫓아가서 반품을 하던지 아니면 더 저렴한 옷으로 교환을 해버릴까 싶었다.



옷 자체는 정말 이뻤다. 내가 좋아하는 그 브랜드는 유행 타는 스타일도 아니고 굉장히 기본에 충실하며 고급스러운 소재를 중시하기 때문에 한 번 사면 몸이 붇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십 년도 거뜬히 입을 수 있다. 관리 잘해서 깨끗하게 오래 입는 게 돈 버는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어제 산 옷을 또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오... 당첨이다 당첨!"



"뭐라고...?? 어제 로또 샀어?"



무려 로또 4등에 당첨된 것이다!


상금은 오만 원!



아이를 얼싸안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우리 오만 원 벌었다 오예! 이게 무슨 횡재냐..

아니, 번호 하나만 더 맞으면 3등일 수도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4등이 어디냐며 진짜 대박이라고 한창을 웃고 떠들었다.



"아, 어제 옷 산다고 돈 썼는데, 또 이렇게 돈이 들어오네?!"



어제 쇼핑에 쓴 돈에 비하면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인데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일말의 죄책감도 같이 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어리석은 존재인가. 그보다 훨씬 더 큰돈은 써놓고, 단 돈 오만 원이 꽁으로 생기니까 행복해서 죽겠다.



역시, 돈은 돌고 도는 건가.

써야 또 들어오고 하면서 순환되나 보다. 이렇게 돈이 순환돼야 경제도 돌아가고 나라도 발전하고 난 애국시민인 거야.. 그래 기왕 쓴 거 좋게 생각하자며 마음을 잡아본다.



아무튼 학부모총회 빌미로 쇼핑한 거 잘한 일 맞겠지?

아,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 산 옷은 아주 가벼운 소재의 봄옷인데, 날씨예보를 보니 학부모총회날은 꽃샘추위가 오는지 기온이 낮다. 그럼 겨울옷을 입고 가야 하나.. 이럴 거면 쇼핑 왜 한 거니. 또 죄책감이 몰려온다.



나이 드니까 옷 한 벌 사는데도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도 넘쳐난다. 아무 생각 없이 꾸미는 데에만 집중하게 그게 세상에서 제일 중한일인 줄 알았던 20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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