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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18. 2024

운동회는 누구를 위한 날일까

비주류 아이를 키우는 마음

평소에도 등교거부는 일상의 평범한 일부였지만, 운동회 전 날에는 유독 더 심하게 보챘다. 내일이 운동회라서 더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말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 말을 한참 곱씹어보며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썼다.


보통의 중고생 남학생들은 평상시에는 학교에 안 나오거나 불성실하게 다니더라도,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축제 같은 행사는 기필코 참석하려고 용을 쓴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녀석들이 학교 행사날에는 더욱 흥분해서 행여 사고라도 칠까 봐 초긴장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축제를 축소시켜서 운영해야만 했을 때 아이들의 원성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보통의 아이들은 학교 행사를 무척 고대하고 기다린다.


그 보통의 범주에 내 아이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사살하게 된 거다.

운동회 날에 왜 가기 싫을까.


"하루 종일 공부 안 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니까 더 좋지 않아?"


별 대답을 못하는 아이는 그냥 싫단다. 운동회도 싫지만 현장체험학습인 소풍도 가기 싫단다. 작년에도 하나도 재미없었다고 시시해서 가기 싫다고 한다.


평소에도 쉬는 시간이 힘들어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다. 수업시간엔 그런대로 따라갈만하고 수업만 집중하면 되니까 별 어려움이 없는데, 쉬는 시간에 누구랑 어떻게 놀아야 할지 서툴러서 그런지 쉬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게 같은 반 야무진 여자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또 아예 친구들이랑 못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혼자 놀 때도 있지만 짝꿍이나 주변 친구들이랑 장난치고 놀기도 한다고 우리 애보다 더 심하게 혼자 있는 애는 따로 있다고 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운동회나 소풍 같은 날은 프로그램에 꽉 짜인 게 아니라 느슨하게 운영되고 중간중간에 쉴 시간도 많은데, 그 틈을 타서 보통 아이들은 서로 장난치고 놀면서 편하게 노는 시간으로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여유 시간이 내 아이에게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서 못 견디게 힘든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운동회라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유는 이것밖에는 없다. 그래도 딱히 아픈데도 없고 막상 가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경기도 경험인데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달래서 보냈다.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어서 운동회에 가서 아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중간에 쉴 때마다 정말로 아이는 누구랑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하고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틈틈이 경기가 계속되어서 그 방황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선생님과 강사진이 시키는 대로 규칙을 지키며 경기에 참여만 하면 되는 거라 아이의 방황과 외로움이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다행이었다.





한창 운동회를 보고 있는데, 같은 센터를 다니는 다른 반 친구 모습이 안 보였다. 그 엄마랑 대화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워서 한창을 눈으로 찾다가 연락을 해보았다. 아이도 별로 원하지 않고, 가봤자 애가 모난 행동 하는 모습 때문에 상처받게 될까 봐 그냥 병결처리 하고 집에 있다고 했다. 나쁜 엄마 된 것 같아서 속상하지만, 그냥 마음 편한 걸 선택하고 싶었어요,라는 말하는 그 엄마의 말에 목이 한 번 더 메어왔다. 이미 전날밤 밤새 울어서 눈이 부을 대로 부어서인지 눈물까지 나오진 않았다.


작년에 그나마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엄마랑도 오랜만에 인사도 할 겸 얼굴을 보려고 찾아보았다. 그 친구의 모습도 안 보이고 수많은 학부모 사이에 그 친구 엄마도 안 보였다.


'오늘 운동회라서 안 왔구나.. 작년에는 학예회날에도 결석했는데..'


작년 행사 때도 빠진 친구였는데, 운동회날에도 결석한 것 같았다. 작년에는 아팠다고 들었는데 올해도 하필 운동회날 아픈 걸까. 그 친구는 척척박사님 스타일로 공부도 기본적으로 잘하고 책을 많이 읽어서 박학다식한 아이다. 모든 재능을 다 가질 수는 없는지 체력이나 운동신경 쪽은 부족한 편이라 엄마가 늘 걱정이라고 들었다. 본인도 운동을 못한다는 걸 인지하는지 거의 모든 종류의 운동 학원에 보내봤지만 모두 다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친구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냥 운동회는 오지 않는 게 낫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닐까. 괜히 와서 자기의 부족한 운동실력을 확인사살하느니 운동회 따위 하루 쉬어가는 게 더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전혀 확인된 내용은 아닌데 나 혼자서 그렇게 추측했다.



운동회라서 학교에 가기 싫다던 내 아이 또한 그런 무리 중 하나일 뿐이다. 신나게 달리기를 하고 피구에 참여하는 흥분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서글퍼진다. 저 아이들은 주류, 내 아이는 비주류겠지. 이미 나눠져버린거겠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학교 행사가 내 아이 같은 일부에게는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은 날이 돼버린 건 누구 탓일까. 학교 탓일까. 아이탓을까. 내 탓이겠지. 사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친구들이랑 까불고 떠들썩하게 웃고 떠드는 그런 무리 주변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내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활달한 친구들의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웃고 떠들며 행복한 모습이다.

'저런 게 보통의 운동회날 모습이지..'


뒤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애가 잘 견뎌내 주고 있을지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고 있는 나 같은 엄마는 초등학교 운동회날의 분위기와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 점점 배워간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세상이지만, 알게 돼서 더 씁쓸하기만 하지만 산다는 게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소풍도 가고 싶지 않다고, 제발 안 가면 안 되냐고 애원하는 아이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겠다.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말은 했는데, 체험학습 써주는 편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모두가 즐거운 학교 행사 따위, 내 아이에게는 불안만 가중되는 날이라면 굳이 억지로 보낼 필요가 있을까. 개근상에 목매달 것도 아닌데.




<사진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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