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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05. 2024

어머님 의대생은 초등을 이렇게 보냅니다,를 읽고

요렇게만 따라 하면 의대를 갈 수 있다, 그 말이지?

유명한 교육 관련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 책의 저자를 본 적이 있다. 잠깐 스치듯 보고 지나친 게 전부였지만 교육계에 몸담은 경력 있는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파릇파릇한 20대 초반 현역 의대생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도서관에 가니 그 의대생이 쓴듯한 책도 있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되겠지? 약간의 죄책감을 안은 채 책을 펼쳐 들었다. 언어발달도 느리고 사회성도 느려서 몇 년째 치료실을 전전하는 마당에 언감생심 의대라니, 네가 지금 제정신이니? 자식한테 욕심을 부려도 유분수지, 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도 궁금할 수는 있다. 현역 의대생은 대체 초등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얼마나 잘 보냈으면 학군지 아닌 지방에서 한 방에, 현역으로 의대를 들어가게 되었는지 궁금할 수는 있다. 아이가 남다르다고 해서 궁금할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건 아니잖아? 애써 합리화하면서 책을 펼쳐보았다.



일단 책표지의 소개가 굉장히 자극적이다. 교육에 조금 관심 많은, 열성적인 엄마라면 눈길이 가고도 남을만한 제목과 소제목을 갖추었다.




전교 1등 의대생이 알려 주는 최고의 공부법과 최상의 자기 관리법
지방 일반고에서 의대에 가기까지!
현역 의대생의 의대 직행 비밀과외
공부 잘하는 아이는 초등 때부터 다르다
제대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학부모를 위한 단 한 권의 책




이 정도면 나 같은 평범한 엄마를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어차피 그렇고 그런, 이미 수많은 자녀교육서에서 접했던 뻔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걸 예감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니 혹시 나는 없었다. 역시나였다.



초등 시절에 아이에게 공부를 너무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

흥미를 존중해 주되 좋은 습관을 들여주라는 것.

공부 이외 다양한 예체능을 경험시켜주라는 것.

자녀와 소통하는 부모님이 되라는 것.

결국에는 독서가 중요하고 글쓰기도 시켜주면 더 좋다는 것.

수학은 선행보다 현행 심화를 추천한다는 등등..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중간중간에 생각지 못했던 공부 꿀팁들도 소개되기는 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공부 플래너를 쓰는 습관을 미리 들이면 좋다는 것과 서술형 대비를 위해서라도 악필을 고쳐주라는 것 그리고 중고등 때 학교 내신시험 대비 방법들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같은 의대생 친구들 수십 명의 인터뷰로 대미를 장식한다. 수십 명의 의대생이 초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들이 포탄처럼 쏟아지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걸 다 어떻게 지키라는 거지?



각자 중요시하는 영역도 다르고,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비슷한 듯 각기 다르다. 의대생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역시 독서이긴 했다. 그런데 독서가 중요하다는 말은 여느 육아서나 자녀교육서에서 백번 만 번 강조되는 말이라서, 딱히 새로울 게 없다. 그래서, 책만 많이 읽히면 너희들처럼 의대를 갈 수 있다는 말이니?라는 엄한 생각만 드는 것이다.







책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용도 충실하고 전교 1등에 공부를 잘했던 의대생이 쓴 책인 만큼 굉장히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문제였다. 자꾸만 삐뚤어진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정말 의대를 갈 수 있다고? 공부도 운동만큼은 아니어도 타고난 재능의 영역은 아니란 말인가? 이 모범생 출신 의대생이 말한 대로만 따라 하면 누구든지 현역에 의대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거 희망고문 아니야?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누구나 이 책에서 추천한 방법을 똑같이 적용해서 노력만 하면 의대를 입학할 수 있는 건지. 상위 0.1%의 관문을 뚫어야 할 정도로 의대 입학은 바늘구멍이다.


이 책과 묘하게 제목이 겹치는듯한 인상을 가진 책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의 정승익 선생님은 우리 애가 쉽게 인서울 할 거 같죠? 스카이는 못 가더라도 서성한은 갈 거라고 믿으시죠? 그 정도 가려면 상위 6퍼센트 내에 들어야 하는데 확률적으로 내 아이가 94퍼센트에 들 확률이 높을까요, 6퍼센트 이내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라며 팩폭을 날렸다.


의대가 문제가 아니라 상위 6퍼센트에 들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서울 대학에 가는 것조차도 그 가능성이 어쩌면 희박하다 볼 수 있는데 극상 위에 들어야만 갈 수 있는 의대를 들어간다는 게, 과연 비학군지 지방 출신에 현역 의대생이 방출해 주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저자는 말도 못 하게 정통적인 모범생이다. 부모님께서 그런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육아 환경을 조성해 주는데 노력을 하신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공부를 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특히 시험을 잘 보는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많이 연구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권위가 이렇게나 대단한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의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초등맘들을 대상으로 한 자녀교육서를 쓸 수 있다는 게, 과연 외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일까라는 의문도 들고. 스무 살에 의대를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솔직히 부럽기도 한데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치료를 받기 위해 발달센터에 다녀오고, 학습지 쪼금 풀면서 나눗셈 연산이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다며 머리를 쥐 뜯으며 징징대는 아이를 옆에 두고 가지런히 탁자에 놓인 이 책표지를 보고 있자니 이 무슨 희극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무얼 위해서, 뭘 어쩌자고 이 책을 보고 있는 건가.


어쩌다 우리나라는 태어나기만 하면 어려서부터 모두 의대를 위해서 뛰어가야만 하는 레이스에 참여하게 되는 건지, 정말 앞으로 의대 말고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시대가 돼 가고 있는 건지. 의대생만큼 공부 잘해서 예술가도 되고 소설 쓰는 작가도 되고 집 짓는 사람도 되면 안 되는 건지,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는 현실 감각 없는 무식한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ADHD 특성상 고도의 집중력과 자기 조절력을 발휘해야 하는 최상위권의 공부 실력자가 되는 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꿈은 아이가 스스로 꾸고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나가는 거지 내가 아이의 목표를 대신 세워주는 건 아니니까, 슬쩍 아이에게 넘겨본다. 어느 시점이든 스스로의 의지와 동기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지금은 당장 주어진 학습지 연산 숙제나 제때 하도록 시키는 게 나에게 우선 주어진 과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문득 이 영상이 떠오르는걸까?


출처: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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