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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13. 2024

교수님과 변호사

그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

새로 부임해오신 우리 교회 목사님은 정말 설교를 잘하신다. 설교 내용이야 대부분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가 않다. 나일론 신자라서 주일에 예배 참석하는게 전부이고, 전에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적도 많았다. 이 목사님은 뭐라도 하나 건져갈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는데, 이 목사님은 말을 정말 잘하시는게 특징이다. 사람을 끌어당겨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설교 중간 중간에 적당히 유머를 가미해서 웃게 만들고 세속적인 농담말도 가끔 던지시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목사라는 직업은 어쩌면 말을 잘해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조심히 해본적이 있다.



이번에 연수를 받았는데 두 분의 강사가 초청되었다. 한 분은 대학교수님이었고, 나머지 한 분은 학교폭력전담 변호사였다.


대부분 이런 연수는 정말 별 기대 없이 임하는 편이고 내 육체만 의자와 책상에 맡겨둔 채 영혼은 저 멀리 배회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정말 열심히 임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렇고 그런 강의, 별로 재미가 없으면 도저히 몰입할 수가 없었던 경험이 많다.


그럴때마다 몸서리치게 깨닫는 것은 학생들은 오죽 힘들까, 정말 수업은 재미있게 해야겠다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유익한 수업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도저히 집중이 안되는건 애나 어른이나, 학생이나 교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 들은 강의에서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했다. 두 강연 모두 완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익했으며, 새로 알게 된 것도 많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나의 대학시절 만났던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지루했고 엄숙했고 강의 시간은 곧 견뎌내어야하는 집중력 테스트같은 느낌이었다. 간간이 괜찮은 분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정말 흔치 않았다.


내가 운이 없었던건지, 시간이 지나니 트렌드도 바뀌어서 요즘 교수님들은 다 이런건지 모르겠는데 강의를 전달하는 교수님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받아 적고 메모하기에 바빴다.


굳이 받아적을 필요도, 필기하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도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메모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두번째 강연인 변호사님의 강의는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PPT같은 화면 자료도 없이 정말 그냥 마이크 하나만 들고 세시간 내내 강연이 이어졌는데 한 번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어쩜 저렇게 위트있게, 적당한 유머도 가미해가면서, 본인 비하스러운 농담말도 곁들이면서, 그러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감있는 태도로 이어지는 강의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내가 이런 강연을 들은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내용 자체도 상당히 실질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하는가,였다. 태어날때부터 말을 잘했을까? 대체 뭘 먹고 살았기에 말을 저렇게 잘하는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닮고싶다는 생각이 연신 드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도 대단히 갖추었고 거기에 전달력까지 갖추니 본인 일을 하면서도 강연도 다닐 수 있나보다. 어떻게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멋있다. 대단하다.. 나는 그동안 집에서 뭐하고 있었냐..


두 분다 나이도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최근 세상 흘러가는 트렌드와 시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았다.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알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부딪히고 시도하고 실수하면서 쌓아갈 수 있는 현장 지식들도 많은 분들이었다.


그에 비해 집에서 애만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한참 부족하게 느껴져서 내 자신이 초라한 생각부터 들었다. 당장 유튜브만 켜도 솔직히 그보다 더 대다한 사람들 강연도 접할 수는 있지만 직접 대면하면서 듣는 강의의 몰입감은 남달랐다.


내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저런 훌륭한 전달력과 강의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한마디로 말을 잘 못하면 그 이상의 발전은 없는 것이다. 말 잘하는게 정말 대단한 능력이구나.. 나는 마이크 쥐어줘도 가르치는 학생들 아닌 일반 사람들 앞에서 1분도 말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 넘치는 자신감과 역량이 부러웠다. 전해주는 내용보다 더 감동받은건 그들이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왔다는것,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자연스럽게 쌓인 노하우와 역량을 이렇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그 커리어 자체도 부럽고 말 잘하는 것도 부럽고 부러운거 천지다.


모든 교수님과 모든 변호사가 그 분들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직업 자체가 말로 먹고 사는 일이라 더 그런 역량을 키우기에 용이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은 당연하고 그걸 쉽고 재미있게 잘 전달할 수 있는 것도 갖춰야하는 하나의 역량이 된 시대인것 같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나는 어떤 경쟁력을 갖췄을까,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가진 경쟁력은 과연 뭘까.

직장에서도 한참 멀어지고 집에서 느린 아이만 바라보면 지낸 최근의 몇 년이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니야, 그 시간동안 배운 것도 많고 인내심도 늘었고 그전보다 나아진게, 발전한게 뭔가 있을꺼야.  주장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아닌것 같아서 자꾸 작아진다.


아무튼 말 잘하는 능력, 그것 참 부럽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말 좀 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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