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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21. 2024

내 인생에도 해결사가 있었으면

늦깍이 야구팬입니다만

이번 기아 경기는 역전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경기였다. 아이가 야구에 단단히 꽂힌 덕에 월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밤 야구를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건 너무 길고 중간에 점수만 확인하다가 7회 정도부터 함께 앉아 보는게 요즘 일상이다.


매번 봐도 어쩜 저렇게 푸른색 눈을 가졌을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엘지의 오스틴 선수가 역전 홈런포를 날렸고, 기아는 역전 당했다. 김도영의 만루 홈런이 무색해지는 오스틴의 멋진 홈런이었다. 동료들과 환호하며 멋지게 세레모니하는 오스틴을 보고 있자니, 착잡해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저렇게 좋을까 싶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4대3으로 지고 있는 경기였다. 오늘은 이렇게 끝나겠구나, 별 기대없이 보고 있었는데 왠걸 갑자기 최형우의 솔로 홈런이 터졌다. 

동점이 되고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팬들은 열광했다. 

순식간에 최형우는 그렇게 영웅이 되었다.



나도 너무 흥분해서 리플레이해주는 홈런 장면을 보는데 아나운서의 딕션이 귀에 강하게 꽂혀온다.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우리의 해결사, 최형우입니다!"



해결사는 최형우의 오랜 별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나운서의 설명이 왜 이렇게 낯뜨거운지.

나만 그렇게 느꼈나? 어린이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황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언뜻 마법사랑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것도 같은 해결사라는 단어가 조금 유치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실소가 터졌다.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러 어김없이 나타나주는 우리의 히어로! 절대적 영웅! 

그는 과연 언제 구세주가 되어 주인공을, 지구를 아니 온 우주를 구해줄것인가!


카메라는 팀원들과 하이파이브하며 홈런의 여운을 나누는 선수를 계속 비춰주었다.

이어지는 홈런포로 결국 역전의 역전 드라마를 거듭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해결사 최형우 선수의 동점포가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다.

기아타이거즈는 참 좋겠다.

해결사가 있어서.


위기에서 구해주는 해결사,라는 말이 낯간지러워서 흠칫 웃다가, 문득 내 인생에도 해결사가 안 나타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도 4번 타자의 위엄을 갖춘 해결사가 멋지게 나타나서 시원한 만루 홈런 하나 때려서 나의 위기, 근심, 걱정, 고뇌, 불안 따위 다 시원하게 날려 주었으면, 감히 바래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해결사라는 별명을 가진 4번타자도 매번 홈런만 치는건 아니다. 

그 선수가 삼진아웃 당하는 모습, 병살타를 쳐서 더블플레이 당하고 쓸쓸히 경기장을 걸어나가는 모습은 수도 없이 봤고, 야구공에 맞아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나가는 모습까지도 봤다. 


우리의 해결사가 되기까지 그도 수없는 고난과 시련을 겪었을 것이 분명한데, 주는 것 없이 공짜로 내 인생에 나타나 홈런 한 방 날려주길 바라다니 내 욕심이 과했나 싶다. 

내 인생의 해결사는 오로지 나 자신밖에 될 수 없음을, 나를 위한 구원투수는 오직 나 뿐임을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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