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그 잔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다른 책을 손에 잡아봐도 쉽사리 집중이 되지 않는다. 정말 소설가란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소설에는, 문장에는 강한 힘이 있었다. 문장에서 힘이 느껴졌는데도 특이한 건 글의 흐름 자체는 굉장히 담담하고 담백한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다. 이런게 바로 훌륭한 소설가의 자질일까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소재인지도 모른다.
또 5.18이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유족들 보상도 주고 국가 유공자 혜택도 받지 않았어?
광주에서 멀지 않은 지역 출신임에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흑백 사진과 미디어로 마주치는 그날의 현실이 지금과는 너무 달라서, 아무리 상상을 하려고 해도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 시기 대학생이라서 현장에 계셨던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피를 토하며 그날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얼마나 큰 사건이었길래 그럴까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5.18 때 뭐 했냐고. 어차피 부산 사람이라서 만족할만한 답이 안 나올걸 알면서도, 그 시대에 성인이었던 만큼 뭔가 알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그냥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라는 소식만 들었다고 했다. 더 이상 정치적 의미는 덧붙이지도 않았고 어린 나이였던 엄마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은 것 같았다.
차라리 계엄군의 총구에 정확히 조준당해서 큰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어서 다행이라는 유족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슬픔의 크기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차라리 총에 맞아 죽은 게 낫지, 조사실에 끌려가서 혹독한 고문을 받은 사람들의 삶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개돼지 취급을 받았다.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난 죄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 채 견뎌내야 했던 고문의 시간은 트라우마가 되어서 제대로 된 인생을 꾸리지 못한다. 머리가 이상해져서인지 자격증 하나 따려 해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술을 배울만한 끈기도 사라져 버렸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술에 의지해서 살든지, 심한 경우는 정신병원까지 가게 된다.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연기처럼 사라지는 느낌이다.
황당한 건 조사실에 끌려간 시민군들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대다수고 중학생도 소수 있었으며 어설프게 총은 들고 있었지만 어떻게 총질을 할지도 몰라서, 그리고 사람을 향해 총을 쏠 용기도 없어서 계엄군이 쳐들어와도 속절없이 잡혔을 뿐 총 한번 제대로 겨누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 시민군에게 반동분자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상상하기 힘든 고문이 감행되었다. 여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잔인하게 짓밟혔다.
늘 폭력은 나쁜 거야,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거야 도덕성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 나인데 국가에 의해서 자행된 폭력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발생해서는 안 되는 거고 나쁜 거지만 시민을 향한 국가에 의한 폭력은 정당한 거야. 왜냐면 그 시민이 잘못했으니까, 그 사람은 빨갱이니까,라고 말해야 하나?
폭력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당장 영화 몇 편만 보더라도 폭력적인 장면이 쉴 새 없이 쏟아질 때가 많다. 악을 처단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선이 행하는 폭력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되는 건데, 왜 그런 종류의 폭력에는 온건해지는 걸까.
숨이 끊어지든 말든 군화로 짓이겨 밟는 폭력을 보면서, 눈동자만 움직이면 담뱃불로 눈알을 지져버리는 폭력을 보면서, 조사받는 여성 시민군에게는 삼십 센티 나무자로 자궁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을 때까지 찔러 넣어서 의식을 잃게 만드는 폭력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성악설이 맞는 걸까? 어쩜 이렇게 잔인한 일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할 수 있는 걸까? 특별히 그 당시 계엄군인과 경찰들은 특별히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하고 흉악한 인성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걸까?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아무 힘 없이 읊어대는 말일뿐, 실상은 아무 실효성도 없는 허울 없는 울림일 뿐인 건지 궁금해졌다.
그 당시 참상을 보다 보면 정말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한강, 소년이 온다>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일부가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이 페이지에서 나는 소름이 돋아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포상을 받고, 또 사람을 죽이러 가고. 아무리 군인 신분이라지만 죄책 감 없이 자연스럽게 업무 처리하듯 그런 일을 하는 인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러한 환경에 처하면 어쩔 수 없이 악행도 저지르게 되는 걸까. 군인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신분이니까.
그런데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죽이는 사람도 피가 터져 나올 때까지 짓밟고 두들겨 패는 사람도 시신을 층층이 쌓아 기름을 붓고 불태우는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순간 사람처럼 무서운 게 없다는 생각이 엄습해 오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회의심이 들기도 하고 읽을수록 심장이 떨리고 처참해지는 기분이라,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과거의 일들을 보면서 답답해졌다.
그렇게 참담한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나가고 책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의외로 한줄기 희망과 같은 빛을 보았다.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피 흘리는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황급히 달아난 군인, 집단발포 명령에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올려 쏜 병사들,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군인들에게 단체로 무슨 약을 먹이지 않고서야, 제정신으로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지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군인이 있었다는 말에 나는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그렇지, 모든 인간이 그렇게 잔인한 것은 아니지. 잔인할 수밖에 없는 그 외 다른 선택이 없는 환경에서도 끝까지 소극적이나마 자신을 지켜나갔던 군인들이 있었다는 데에, 비록 소수였다고는 해도 나는 큰 숨을 쉬어 내렸다.
다행이다. 그런 군인이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집단의 모두가 미쳐도 제정신을 붙잡으려 애쓴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 구절이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덮고 나서도 덜 찝찝했다. 집단 발포 명령에 따르지 않은 군인이 있었다는 글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지고 침잠했을듯하다. 그 구절은 전체적인 우울함을 관통하는 가운데 미약한 빛이 되어 주었다.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절대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한낱 소시민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또 무력감이 들지만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일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강 작가님의 또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