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과 싸우다
아침 일찍 영어캠프에 데려다주느라 방학임에도 학기 중처럼 아침이 바쁘다. 육아의 몇 안 되는 기쁨 중 하나는 곤히 자고 있는 아이 모습을 보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든 참 깨우기가 싫다.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이쁘고 사랑스럽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아침밥을 먹이고 바지런히 챙겼다.
늦게 일어난 것에 비해 밥도 먹고 바로 씻고 옷도 갈아입고 아이도 준비를 금세 마친다. 다른 학교 아이들과 섞여서 하는 영어캠프라 적응이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 큰 이슈없이 며칠째 적응 중이다. 학원 커리큘럼처럼 빡빡하지도 않고 만들기나 쿠킹클래스등 체험적 요소가 많아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다 챙기고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그때부터 문제 발생이다. 내 앞에 어떤 커다란 세단이 이중주차를 해놓은 것이다!
어제 아주 좋은 자리에 차를 대놨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위치가 현관과 굉장히 가까운 탓에 차들이 한 번씩 얄밉게 이중주차를 할 때가 있다. 그럼 주변 차들은 대체 어떻게 차를 빼라는 건지. 운전 잘하는 남자들이야 이런 공간에서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뺄 수야 있겠지만 나로서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 딱 봐도 내가 빼기에는 좁아도 너무 좁고 각이 안 나온다.
바로 차에 있는 번호로 연락을 했다. 태평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좀 빨리 빼달라고 급하다고 부탁드리니 마지못해 내려와서 빼주마,라고 선심 쓰듯 대답한다. 바로 내려온다는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지 2분, 3분이 넘어간다. 그래도 다행히 5분을 넘기지 않고 내려오셔서 차 안에 있는 나를 한 번 힐끗 보시더니 차를 빼준다. 그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참 부아가 치밀 정도로 느리게 느껴진다.
남은 급해죽겠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좀 빠릿빠릿 움직일 수 없나..
어렵사리 차를 빼서 캠프학교로 출발하는데 그때부터 아이는 약간 조짐을 보였다. 그날따라 신호도 계속 걸리고 도로에 차도 다른 날보다 더 많은 느낌이다. 꼬리물기를 시도해 봤으니 계속 신호 운이 따라주질 않는다.
수업 시작이 5분 남은 시점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늦었는데 어떡해, 이러면 늦잖아. 늦으면 안 되는데 어떡해, 하면서 감정에 못 이겨 울고 짜증을 낸다.
같이 여행을 다닐 때도 아이의 이런 특성 때문에 참 힘들었다.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어디 데리고 다니기가 어릴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수월해지기는 했는데 한 번씩 이렇게 상황에 압도될 때가 있다.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거나, 시간 안에 해야 하는데 조금 늦을 것 같다든가, 줄을 빨리 서야 하는데 늦게 도착한 것 같은 판단이 들 때 아이는 갑자기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안절부절못하며 긴장한다.
adhd 약물 치료에 불안 조절하는 약도 포함되어 있지만 약으로 다 조절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래, 약으로 다 낫게 할 수 있으면 이게 쉬운 질환이겠지.
중요한 건 아이가 그렇게 짜증 내고 화를 내면서 울면 나도 순간 같이 화가 나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아니, 이게 그렇게 화낼 상황이야? 울 일 아니야. 울지 마. 이제 곧 우리 차례잖아, 왜 그래.' 하는 말이 먼저 나와버린다.
아이는 그러면 한참 감정에 취해 있다가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내 눈치를 보면서 뒤늦게 사과를 한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엄마 화 풀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뒤끝이 남아서 또 바로 사과를 안 받아준다. 애가 불쌍하기는 한데 나는 나대로 애한테 감정쓰레기통 노릇을 언제까지 해줘야 하나 싶어서 참 지겹기도 하고 질리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금방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다.
아이의 이런 특성에 대해 센터선생님께도 수업 때 좀 반영해 달라고 부탁드리기는 했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일상에서 한 번씩 튀어나오는 상황들이라서 수업 시간에 뭔가 이런 조건을 만들어서 연습해 보며 대비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특히 나와 함께일 때 발생할 때가 많다.
담임선생님도 1학기 상담 때 아이의 이런 특성에 대해서 지적하셨다. 너무 느긋하고 여유 있는 것도 별로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발표나 긴장되는 상황 앞에서 애가 너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게 눈에 보여서 좀 안타깝다고 하셨다. 아이의 기질에 대해 설명드리면서 좀 배려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집에 와서 나한테는 아이가 말한 적 없는데, 같은 반 여자 아이들 엄마 제보에 따르면 아이는 1학기에 두세 번 정도 교실에서 울었다고 했다. 그 여자친구도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튼 몇 번 울었고 선생님이 달래줬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아이는 집에 와서 나에게 절대 하지 않는다. 이제 초4라서 그런지 자기 자존심이 좀 세진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엄마가 너무 걱정하고 호들갑을 떠는 게 싫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보다는 내가 어른이니까 내가 좀 더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그리고 능숙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법 말고는 순간의 상황에 압도되어 불안해하는 아이를 도와줄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번에 또 이런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면, 아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말로 설명해 주고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쁜 일은 생기지 않는다, 조금 심호흡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다,라고 최대한 편안하고 안정적인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고 정리해 주어야겠다.
이게 말이 쉽지, 막상 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나도 참 대처가 어렵다. 조금씩 고쳐나가자. 방학이라 애랑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덥고 짜증 나도 나부터 좀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자. 부모 노릇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