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 키우기
한 달에 한 번 아이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학기 중에는 평일에 아이는 학교, 학원 스케줄로 바쁘기 때문에 나 혼자 가서 원장님과 간단하게 상담하고 처방전을 받아온다. 원장님은 방학 때라도, 아니면 아이 시간 맞춰서 한 번씩 함께 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엄마만 보는 것보다 아이를 잠깐이라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진료를 하는 게 훨씬 아이 컨디션을 체크하기에 낫기 때문일 것이다.
진료 예약이 잡혔던 목요일은 특히나 방과 후 수업까지 하나 듣는 날이라 더 오후에 짬을 내기가 어려워서 학습지 수업은 선생님께 요청해서 날짜를 바꾸고 시간을 맞춰서 어렵사리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갈 수 있었다.
병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번화가라 차가 꽤 막힌다. 아이에게는 상담 가는 거니까 가서 원장님이 질문하시면 학교 생활 잘하고 있다고 대답하면 된다고 일러준다. 아이는 자신이 왜 이 병원에 가야 하는지 크게 궁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센터 다니는 것처럼 엄마가 가야 된다고 하니까 별생각 없이 가는 것 같다.
전업주부로 지내는 요즘 나는 출근할 때만큼 옷에 신경 쓰고 살지 않는다. 출근할 때에는 추운지, 비 오는지 날씨도 매일 확인하고, 직장에서 보는 눈들도 있으니 약간의 격식은 있으면서도 너무 후줄근하지 않은 옷차림을 입으려고 신경 쓰는 편이었다. 아가씨 시절만큼 패션에 신경 쓰면서 옷 쇼핑을 자주 하고 유행하는 스타일도 도전해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감각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아이 케어하면서 집에만 있으니 따로 대형마트에 장 보러 갈 일이 아니면 출근할 때처럼 꾸며 입을 일이 없었다. 왜 엄마들이 편한 등 하원 룩을 많이 찾는지 이해가 됐다. 운동복 차림까지는 아니어도 동네에 다닐 때 편하게 입는 옷 위주로 입고 다니기 시작했고, 즐겨 입던 쟈켓이나 코트, 원피스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 정기 진료 가는 날만큼은 조금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평소에 동네에서 입듯이 대충 편하게 입고 가고 싶지 않다. 원장님과의 진료 시간이 길지도 않다. 기껏해야 10분에서 15분 내외인데 그 시간 동안 아이의 약물 복용 후 컨디션과 최근의 문제 행동, 발달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짧은 면담 시간이지만 나는 출근할 때처럼 바르고 예의를 갖춘 옷차림으로 의사 선생님을 마주하고 싶었다.
아이의 방과 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요즘 신호등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아들은 자기가 어디 가는지 큰 관심도 없고 차 안에서도 오로지 신호등 색깔이 바뀌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자주 가는 메디컬 빌딩인지라 능숙하게 주차 관리인께 주차 확인증을 받고 건물 주차장에 들어선다. 토요일에 오면 주차할 곳이 없어서 한참 기다렸다가 겨우 주차할 수 있는데 평일이라 그나마 주차공간이 한 두대 여유가 있어서 좋다.
아이와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섰다. 대기실에는 여느 때처럼 사람이 꽉 차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예약자 이름을 간호사 선생님께 말하고 대기하는데 아이는 옆에 작게 꾸며진 놀이방 같은 곳에서 놀겠다고 한다. 놀잇감이라고 해봐야 아주 오래된 장난감 몇 개뿐인데 족히 10년은 넘은 것 같은 낡은 블록과 자동차 장난감으로 신호등 놀이를 하면서 잘 논다.
옆에 멍하니 앉아서 원장님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놀이방으로 들어선다. 앳되고 귀여운 인상의 여자 아이는 손에 빨간색으로 된 선물 상자에 묶을법한 끈을 하나 꽉 쥐고 있었다. 그러고는 놀이방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익숙하게 책을 한 두권 꺼내서 그 빨간색 끈으로 책장 위를 계속 휘두른다. 책을 읽는 것 같지는 않고, 끈을 뭔가의 박자에 맞춰서 계속 반복적으로 휘두르기만 한다. 아무 말 없이. 그 아이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인 것처럼. 그 행동에 재미가 붙었는지 더욱더 격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도 한두 번 그 누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혼자 노는데 집중한다.
저게 상동 행동일까,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한 때 아이를 보고 "자폐스펙트럼"을 강하게 의심했고 거의 진단을 확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에 그 행동적 특징을 알아보고 공부한 적이 있다. ADHD와 자폐는 발달장애라는 공통분모에 있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행동적 양상과 특징은 다른 면이 많다.
예약 진료임에도 사람이 많은 탓에 40분 가까이 대기하다가 겨우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원장님께 인사를 대충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놀이 공간에 있는 뽀로로 기타에 관심을 가지더니 그것만 들고 연주해보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요즘 학교는 어떤지, 급식은 잘 먹는지 밝고 명쾌한 목소리로 물어보셨고, 아이는 눈도 안 마주치고 뽀로로 기타에만 집중하면서 성의 없이 대답했다. 질문 내용에 맞는 대답이긴 해서 다행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뽀로로 기타 내려두고 여기 의자에 앉아서 의사 선생님 눈 보고 말씀드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았다. 아이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렇게 하면 어차피 원장님의 성향상 그냥 놔두라고 할 것 같아서였다.
아이와 아주 간단한 대화가 끝나고 엄마와의 면담을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최근 행동 중 두드러진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두어 가지로 추렸다.
첫째는, 게임이나 경쟁에서 졌을 때 그걸 못 견뎌하고 울고 불고 떼쓰면서 감정 조절을 못하는 행동이 있었는데 최근에 센터 수업에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직 눈물이 나오려고 하긴 하지만 눈시울이 붉어졌어도 스스로 참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저께 집 앞에서 우연히 축구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어렵사리 끼워줘서 같이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또 별 것 아닌 일에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울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도 너무 사소한 일에 애가 울면서 반응하니 더 이상 함께 놀고 싶지 않은 내색을 했다. 나는 옆에서 심판이나 골키퍼라도 시켜달라고 그 친구들에게 부탁과 사정을 섞인 어조로 말했고, 비교적 순하고 착한 성향의 아이들이라 받아주긴 했다.
그 상황을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센터에서 하는 구조화된 사회성 그룹 수업에서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지거나 억울한 일이 발생해도 조금은 참아보려고 하는데 놀이터에서 일반 친구들과 전혀 구조화되지 않은 날 것의 상황에서 놀 때에는 그 조절이 잘 안 되는 양상을 띠는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도 이것은 좋은 사인이라며 아이가 발달하고 있는 과정에서 나오는 모습들이고, 점차 감정 조절 능력이 확장되어 나가기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하셨다.
둘째는, <한문철의 블랙박스>라는 TV 프로그램에 꽂혀서 매일 그 사고 나는 장면을 보려고 하고 자동차끼리 부딪히고 사람이 다치는 자극적인 영상에 집착한다는 것과 코딩에 집착해서 매일 코딩 책만 들여다보면서 혼자 코딩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해보는데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이야기했다.
TV에 관해서는 별 반응 없으셨고, 컴퓨터 코딩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할만한 일이라고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요새는 컴퓨팅 능력이 굉장히 각광받고 미래에는 더 중시될 텐데, 이건 더 좋게 바라봐도 될 것 같고 정말 능력을 발휘해서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셨다. 다만 컴퓨터를 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유튜브나 게임같이 유해한 것만 하지 않도록 지켜봐 주고, 코딩 같은 프로그램을 짜는 건 할 수 있게 놔두라고 하신다. 나는 솔직히 이게 그냥 시각 추구의 일종인 것 같고, 유아기에 지나친 시각 추구로 인한 언어 발달 지연까지 있었기에 더 걱정이라고 했더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원장님이 하는 말을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었다. 원래는 핸드폰에 받아 적었는데, 최근에 수첩 메모를 시작하면서 왠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펜을 들고 받아 적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만나서 진료를 하시니 당연히 피로하실 거고, 내 아이는 그 흔한 환자 중에 한 명일 뿐이고, 정신의학적으로 더 심각하게 고통받는 환자들에 비하면 내 아이는 그저 ADHD 약 처방만 간단히 하면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받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었지만, 나와 내 아이 얼굴도 기억 못 할 수도 있고 진료 차트에서 아이의 기록을 보고 기억을 더듬어 진료볼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 아이가 가장 소중하고, 발달상의 어려움으로 겪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걱정거리이고 의논하고 싶고 그에 맞는 전문가의 적절한 조언을 듣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내 마음이 열심히 원장님 말씀을 받아 적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평소에 먹는 약 용량 그대로 처방을 받기로 하고 아이와 진료실을 나와서 다음 달 진료예약 날짜를 잡고, 처방전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늘 하는 일이지만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더 많아진다. 약 복용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채 안되었지만 언제쯤 끝이 날지,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상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매일 그날을 꿈꾼다.
약의 도움을 받고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복용하게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갔을 때 의사 선생님 입에서 "정말 몰라보게 너무 좋아졌어요. 이제 약 복용을 끊어도 될 정도로 좋아진 것 같습니다. 한 번 약의 도움 없이 생활해보도록 하죠."라는 말을 들을 날만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