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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Dec 23. 2022

속물의 눈으로 본 나 홀로 집에

케빈 말고 케빈엄마

크리스마스 시즌하면 떠오르는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봤다.


어렸을 때에도 티브이에서 방영해주는 나 홀로 집에를 연말이면 보곤 했는데 그때는 정말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렸을 적 케빈이 혼자 집에 있으면서 어딘가 모자란 두 도둑에 맞서 싸우는 장면 하나하나가 다 웃겼다.

초등학교 때까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곧잘 봤던 것 같은데 중고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크리스마스에 굳이 <나 홀로 집에>를 챙겨볼 일은 없어졌다. 거의 모든 장면을 되새길 수 있을 정도로 어렸을 적에 워낙 많이 봤으니 다시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어느 정도 자라서 <나 홀로 집에> 정도의 영화는 같이 웃으면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마음먹고 시청했다.

나는 어차피 내용은 다 아니까 별로 집중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고, 케빈이 도둑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골탕 먹이는 장면이나 보고 좀 웃자 싶었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나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굉장히 집중해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이 40이 다 되어 다시 보게 된 <나 홀로 집에>는 어렸을 적 내가 봤던 그 영화와 굉장히 다르게 느껴졌다. 귀여운 악동 케빈이 어쩌다 집에 혼자 남아 악당들을 무찌르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써서 결국 승리하는 내용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보다 더 일단 내 눈을 사로잡은 것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케빈의 집이 얼마나 부잣집인가를 보여주는 여러 단서들이다.


내가 어릴 때는 영화를 여러 번 봐도 케빈이 부잣집이라는 생각은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케빈이 너무 웃기고 재밌고 도둑들이 골탕 먹는 장면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수십 년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든 게 다르게 다가왔다.

케빈이네 집은 미국 시카고 외곽에 넓은 주택에 사는 전형적인 교외 중산층처럼 보인다. 중산층이라고 부르기엔 더 많이 부자인 것 같지만.


90년대 초에 개봉된 영화인걸 감안하더라도 우선 케빈의 가족이 사는 집은 2층집에 정말 크고 넓고 잘 꾸며져 있었다. 부엌도 상당히 넓고, 부엌에 세팅되어 있는 가전제품, 식기도구들도 다 좋은 제품들이었다. 그리고 벽은 다 비싼 웨인스코팅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벽지도 빈티지한 플라워패턴인데 촌스럽지 않고 집안 여기저기 디테일하게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되어 있었다.




"웨인스코팅 몰딩"이라는 집안 벽 인테리어 디자인을 나는 집 이사를 하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알게 된 개념인데, 리모델링 자체도 돈이 많이 들어서 부담스러운데 좀 있어 보이는 "웨인스코팅"까지 추가하게 되면 리모델리 비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인테리어 좀 잘된 세련된 집 사진들을 보면 거의 다 웨인스코팅 벽으로 되어있었다.


케빈의 누나, 형들도 있는 걸 보면 부모님이 자식들도 많이 낳아서 키우고,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다른 친척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나는 설정이다.


크리스마스에 가족, 친척들과 프랑스여행이라는 설정 자체가 케빈이네의 경제 수준을 보여준다. 그것도 일등석을 앉는지 공항에서 픽업서비스로 차를 보내주는데, 가족들이 그 차를 다 타는 과정에서 케빈이 빠진 걸 놓치게 되는 것이다.


케빈의 집 다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케빈 엄마의 스타일이다. 케빈 엄마가 입은 코트가 막스마라 라브로 코트라는 건 몇 년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20년도 더 전인데도 코트뿐만 아니라 입은 니트, 액세서리, 헤어스타일도 다 세련되 보인다. 엄마는 프랑스 공항에서 다시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표를 구하려고 착용하고 있던 귀걸이를 선뜻 내어주는데 그만큼 귀걸이가 값어치 있는 거라 비행기표와 맞바꾸는 게 가능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케빈 아빠도 못지않은 부티나는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버버리 더플코트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수 십 년 전 아이템인데도 유행을 타지 않아서 지금 입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디자인의 코트였다. 이래서 하나 살 때 비싸더라도 명품을 사서 오래 두고 입는 게 더 이득인가 싶다.


사실 나 홀로 집에는 어린 맥컬리 컬킨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것 하나로도 볼거리가 충분하긴 하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나 홀로 집에>를 보면서 나는 새삼 내가 얼마나 변해버렸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는 변한 거 없이 그대로인데 그 사이에 나이를 먹고 세상을 겪은 나는 속물이 되어버린 건지 온통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물질적인 것들 뿐이라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어릴 때는 전혀 몰랐기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결국 나도 자본주의에 사는 속물근성을 가진 어른이 되어버린 건가.


검색해보니 케빈 엄마 역을 맡았던 배우 캐서린 오하라도 정말 나이가 많이 들었던데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방증이겠지.

어른으로 세상을 살다 보니 그간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많이 변해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변해버린 내가 싫다거나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세상에 적응하고 맞추면서 잘 살아보려고 노력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렸을 적 케빈 엄마의 막스마라 코트를 알아보지 못하던 시절의 순수한 동심으로 <나 홀로 집에>를 깔깔대며 보던 시절이 조금 그리운 마음도 든다. 그때는 내가 순수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기에 더 순수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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