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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Dec 22. 2022

크리스마스에 뭐할까 물으니 짜증내는 남편

크리스마스에 다들 뭐 하시나요?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족들이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 궁금하다.


12월이 되니 연말 분위기도 느끼고 싶고,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이 해를 넘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명한 숙소를 검색해보았는데 웬만하면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고, 그나마도 숙박비가 족히 평상시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어디 놀러 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기대도 하지 않았고, 작년처럼 집에서 케이크 사 먹고 스파게티나 만들어먹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내로 다가오니 마침 이브날 저녁이 토요일이니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토요일 저녁에 의례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라 꼭 크리스마스이브 기념은 아니어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는 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웃백 같은 웬만한 패밀리레스토랑은 알아보니 이미 주말 내내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다 부지런한 것 같다. 여행이든 식사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예약하지 않고 닥쳐서 하려고 보면 이미 한 발 늦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할까? 외식이나 할까?"


곧장 답이 왔다.

"외식해도 되고. 근데 웬만한 식당은 다 예약 됐을걸."


외식이 힘들 것 같으면 친정이나 조카네 놀라가도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조카네랑 연락해봤는데 어디 여행 간다고 해서 못 만날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제삼자처럼 성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동네에 있는 소고기집이나 중국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평소에 여행을 즐겨하고 어디든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지인은 가족과 함께 가려고 포시즌스호텔에 여름에 미리 예약해뒀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아웃백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레스토랑 같은 일반 식당이라도 알아볼까 싶어서 갈만한 곳을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남편에게 이런 상황을 말했더니 "그냥 집에서 케이크이나 먹자."라고 말했다.


나는 "ㅇㅇ"이라고 대답하고, 그 후로 퇴근 때까지 아무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저녁에 밥 먹으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디 나가봐야 사람 많고 복잡하기만 하고 애 데리고 고생만 할 뿐이라고 집에서 조용히 있는 게 낫겠다는 식으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나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양문화에서 온 남의 나라 기념일에 굳이 큰 의미 부여할 필요 있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년, 재작년도 크리스마스가 주중이었어서 나도 큰 의미 부여하지 않고 집에서 치킨 시켜 먹고 케이크 사서 먹고 말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주말이라 외식이라도 해볼 생각을 한 거였다.


내가 어디 좋은 데 비싼 데 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호텔 뷔페를 먹자고 한 것도 아니고, 마침 토요일 저녁이니 식당에서 외식 정도는 해도 괜찮겠다고 제안한 것뿐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대화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큰 의미 부여하지 말자. 하루 지나가면 아무 의미 없는 휴일이고 기념일일 뿐인데, 집에서 대충 뭐 시켜 먹고 말지 뭐. 하며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날 낮에 남편은 갑자기 우리 안 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나서 "남의 나라 기념일에 의미 부여하지 말자며."라고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네가 먼저 의미 부여했잖아."라고 답이 온다.


그래, 의미 부여해서 미안하다.

기념일에 의미 부여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매일 똑같이 아무 변화 없이 굴러가는 일상이고 매일의 연속인데, 연말에 느껴지는 특유의 설레는 기분도 느끼고, 평소에 자주 가지 않는 레스토랑에 가보자고 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기념 선물을 부지런히 준비하듯이 말이다.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있다가 갑자기 내가 어떻게 할지 물어보니 조금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나는 남자라고 해서 연휴 계획을 앞장서서 세우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줘야 한다는 입장도 아니고, 항상 그랬듯 거의 모든 주말, 여행계획은 내가 세우는 편이라 내가 예약하든, 남편이 뭘 준비하든 상관이 없는데도 그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한 달 전에 알아보고 꼭 아웃백이라도 미리 예약해서 스테이크라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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