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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 Jul 08. 2015

제주도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제주도에 드나든지 어느덧 5년이 되어간다. 처음 제주도를 갔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육지 사람들이 찾아오진 않았다. 그 5년이란 시간 동안, 힐링과 킨포크가 유행하던 육지에서는 제주도 붐이 일었다. 올레길이 생겼고, 저가항공이 제주도 운항을 시작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좋은 이점들도 생겨났다. 가난한 나로써는 항공값이 말도 안되게 싸졌다는 점이 가장 좋았고, 혼자 여행하는 자를 위한 좋은 숙박시설들이 생겨났다. 홍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이 생겼으며, 맛없는 감귤 초콜릿을  대체할 퀄리티 높은 기념품들이 진열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점 만큼이나 불편함도 생겨났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졌으며, 육지와 다른 것을 찾는 게 오히려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이곳 제주도에서 '침묵'을 찾는 것이 힘들어졌다. 서쪽 바다와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동쪽 바다는 이미 해운대 해수욕장과 다를 바 없는 관광지가 되었고, 해안도로를 따라 우후죽순 생긴 카페에서는 멜론 최신가요 top 100 흘러 나왔다. 도시의 소음이 피해 온 이 곳이 어느새 청각적 도시화가 이뤄졌고, 더 이상 (적어도) 바다와 함께하는 침묵을 찾기란 이 곳 제주도 어디에서나 힘들어졌다. 덕분에 5년을 여행하면서 나는 바다보다 중산간을 더 많이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 다행히 그곳엔 내가 5년 전 처음 느꼈던 제주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 겨울의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올라가는데 정말 죽을 뻔했다. 극한 체험을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가장 최근 떠난 제주도 여행은 2015년 봄이었다. 일 년에 네 번쯤 제주도 여행을 하는 나로써는 매번 여행 일정이 없다. 이미 유명한 관광지는 빼놓지 않고  가봤을뿐더러, 제주도 여행은 내게 관광보다는 휴식의 개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우연히 일찍 도착한 김포공항에서 산 돗자리가 이번 여행의 목적이 되어버렸으니, '이번 여행은 잔디밭 + 돗자리 + 맥주 + 독서를 하자!' 순전히 새로 산 돗자리 덕분이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산 돗자리 치고는 그 돗자리를 펼 잔디밭이 마땅치 않았다. 제주도 여행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제주도는 누어서 쉴 잔디밭이 마땅치 않다. 물론 잔디밭을 포기하고 한적한 바닷가에 돗자리를 펴봤지만, 벌레들의 습격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좋은 날씨만큼이나 따가운 햇빛을 막아 줄 차양은 필수 옵션! 자주 가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물어도 마땅한 잔디밭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충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대답은 '아... 나는 아는데, 막상 설명하기엔 어렵네.'였다. 그 말인 즉, 자신의 잔디밭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잔디밭을 찾기 위해 일단 숲을 가기로 했다. 숲 하면 곶자왈, 곶자왈 하면 비자림이라는 생각에 냉큼 목적지를 정했다. 하지만 비자림도 관광버스 한가득 실어오는 중년의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다. 침묵보다는 아주머니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돗자리의 꿈이 멀어져가던 중, 나는 나의 제주도 첫 잔디밭을 발견했다.



우연히 식당에서 발견한 발라스트 포인트 한 병과 잔디밭, 여기가 천국!

한 시간 넘게 걸었던 비자림을 뒤로 하고 나오던 중, 입구에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매표소 반대편이 보였다. 잔디밭이었다. 적당한 나무와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비자림을 목적지로 하기에 나처럼 이 잔디밭을 지나쳤던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보니 입구와도 꽤 거리가 멀어 사람의 인기척 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가까운 화장실과 편의시설, 침묵과 여유를 찾아 온 내겐 이 곳 만한 곳이 없었다.


곧장 돗자리를 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가지고 온 책을 읽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있기도 했다.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뒀던 맥주를 마시며 적당한 취기와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았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행복이 뭐였을까? 생각해 봤더니 첫째는 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사유지로 점철된 도시에서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공간을 찾았다는 유아적 즐거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제주도는 온전히 내 것인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더불어 이 시간과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침묵이 존재하는 곳임을 깨달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제주도가  발전할지 모른다. 물론 지금의 제주도도 그 본연의 모습을 잃을 만큼 과하게 발전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으로는 분명 더욱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 중산간에 '오름이 보이는 아파트' 분양 광고가 뜰지도 모른다. 그런 무서운 상상을 뒤로 한 채, 제주도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서 내가 발견한 이 행복이 개발의 흔적을 피해 제주도 곳곳에 깃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나 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도시인들을 위해, 어린 시절 찾던 보물처럼 꽁꽁 숨겨져 있기를 바란다.




+ 물론 성수기의 제주도는 이런 침묵을 찾기 더더욱 힘들다. 어딜 가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한 겨울 역시나 이 아름다운 섬을 즐기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바람이 분다. 진짜 제주도를 만나고 싶다면 4월, 10월, 11월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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