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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누구 Mar 01. 2016

자기만의 방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어쩌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은 집순이가 되었다. 어느덧 자취 10년 차 프로 집순이. 근처 학교 앞 자취방에서 시작된 내 자취 라이프는 10년이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이젠 제법 구색도 갖췄다. 처음 고향을 떠나 대학 근처 내 방이 아닌, 내 집을 가졌던 그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스무 살 여대생에 걸맞게, 당시엔 구매대행으로만 주문 가능했던 이케아 철제 침대를 꾸역꾸역 조립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으니 말이다. 처음 내가 자리를 잡았던 곳은 고작 세 평 남짓, 작은 침대 하나에도 방이 가득 찼으며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방이었지만 나는 그 방에서 노는 게 제일 좋았다. 가끔 마트에서 장이라도 봐오면 찬장에 가득 쌓아놓았던  인스턴트식품들을 보며 부자가 된 기분도, 빨래가 끝난 뒤 그 좁은 방 안에 잔뜩 널어놓은 채 맡던 섬유유연제 향도, 내 집이랍시고 벽면 가득 유치하게 붙여 놓은 데코레이션 스티커도 그저 전부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내 선택으로만 채워진 공간을 얻었던 셈이었다.


 말 그대로 그 작은 방은 내 생활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었다. 바쁜 학기 중엔 널브러진 옷가지들로 바닥을 보기 힘들었고, 쓰레기는 제때 버리지 않으면 곧장 냄새가 났다.  좁디좁은 욕실은 조금만 창문을 열어놓지 않아도 곰팡이가 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처음엔 그게 익숙지 않아 밀림을 방불케 하는 야생(?)의 상태를 유지했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곧장 냉동실에, 냄새가 나는 쓰레기는 작은 비닐팩에 넣어서 따로 버리고, 욕실 창문은 언제든 조금씩 열어 놓는 것으로!'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역시나 자취를 하던 고향 친구와 그런 대활 했었다. '나는 고향인 부산보다 서울이 훨씬 좋아. 뭐랄까. 이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의적 선택들을 하고 있는 기분이거든.' 다행히 그 친구는 내 말에 공감해줬다. 문득, 그 말을 뱉는 순간부터 내 선택으로만 가득 찬 집이 훨씬 중요해진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사는 자취생에게 꼭 맞는 반려 생물(?) 꼽자면 역시나 선인장과 다육식물이 아닐까?



 지금의 집은 자취 10년이 그대로 묻어있다. 내 공간의 철칙은 딱 하나. '최소한의 것만 남겨두자'

 가끔 집을 돌보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기분은 더러움도, 지저분함도 아닌 '무겁다.'이다. 잔뜩 어질러지고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물건들을 볼 때면 괜스레 집이 무거워져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아닌 내 물건들이 사는 집에 내가  얹혀사는 기분이랄까? 언젠가 이사를 가기 위해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하나 둘 박스에 넣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이 필요한 건가?'라고.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회의 또한 들었다. 나라는 사람 하나에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많았던가? 본의 아니게 굉장히 복잡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한참 그 생각에 잠겨 짐을 싸면서 마지막 짐을  정리할 때 다짐했다. 적어도 나는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자.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물건도 너무나 많다. 당장에 긴 손톱을 깎을 손톱깎이가 필요하며, 그것들을 정리해 놓을 상자와 서랍장도 필요하다. 그 물건들을 전부 없앨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최대한 물건을 숨겨 놓기였다. 내 눈에 띄진 않지만 어디에 있는지 나 만큼은 잘 알도록.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집을 보며 '정말 너 같은 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진짜 내가 자취생활을 오래했다고 느꼈던 건, 위 습관이 단순히  물건뿐만 아니라 냉장고에도 통용된다는 걸 깨달았던 때였다. 언젠가  술기운에 물을 마시려고 열었던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 게 그 날 따라 마음에 들지 않은 밤이 있었다.  그날 밤, 음식물을 다 먹지 못하고 보관만 하게 되는 냉장고를 말 그대로  뒤집어엎었다. 잊고 지낸 음식들은 어쩜 그렇게 곳곳에 있으며,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들은 어찌나 많던지. 하나 둘 정리를 하면서 술이 깰 뿐 아니라, 이 냉장고를 비워야만 내가 건강해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 날 이후 우리 집 냉장고는 정말 필요한 만큼의 식자재들로만 채워져 있다. 아침에 먹을 사과와 요구르트, 매주 주말 만드는 반찬과 한 번에 많이 지어 놓는 밥, 물론 네 캔 만원 맥주는 당연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확실히 냉장고를 비우고 나니 식습관이 바뀌었다. 보다 건강한 집순이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지금도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은 내게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단순히 능력치의 측면에서 프로 집순이가 된 건 아니다. 내 공간을 갖추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공간에서 만큼은 내가 가장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가장 은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지독히도 까칠한 내가 유일하게 엉엉 우는 공간도, 더럽게 며칠 동안 머리도 감지 않고 맥딜리버리를 주문하는 공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공간도 오롯이 내 집, 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내 마음에 쏙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쏙 드는 건, 가장 적은 것들이 있는 공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역시나 지금의 우리 집은 최대한 무겁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꽁꽁 감춰놨고, 열심히 정리해놨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내 몫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너 다운 집이야'라고 말해줬던 친구의 말이 정말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몇 해 전부터 고향집을 내려갈 때면 내 집에 간다기 보다 부모님 댁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든다. 그런 마음을 처음 느꼈을 때,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내 취향과 선택으로 가득 찬 공간을 가진다라는.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작은 사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도 나만의 방에 대한 애착이  가득할 예정이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선택해 온 취향과 생활들이 이 방 그 자체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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