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혼자 제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혼자 여행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굉장히 심심하다. 귀에 꽂은 음악이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또 다른 혼자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제주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특히 상처 입은 사람들을 만났다. 10년을 만나던 연인과 헤어진 사람, 오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 사람, 어릴 때 자해를 하던 습관 때문에 생긴 상처를 가리려 팔찌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플리마켓에서 팔던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이 떠나는 것은 본능일까.
[노매드랜드]는 상처 입은 사람이 보금자리를 떠나는 이야기다. 누군가 ‘여행은 떠남과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 그랬던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 또 있다면 그것은 삶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라는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면 아쉽기 짝이 없다. 어떤 존재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로 볼 때, 비로소 그녀의 눈에 담긴 피로와 강인함이 보인다.
펀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난다. 배우자를 잃은 그녀는 ‘홈’을 잃은 듯 떠돈다. 떠돌며 알게 된 것은 그녀는 결코 ‘홈’을 잃지 않았다. 그저 ‘하우스’가 없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그녀가 있다. 일자리를 잃어도, 소중한 접시 세트가 깨져도, 그녀는 그녀를 잃지 않는다. 타인의 권유에도 쉽게 응하지 않고, 얼핏 차가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그녀의 자아가, 존재가 뚜렷하기 때문이겠다.
안 좋았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영화는 지루하다. 의미 있는 영화이지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테이크가 길고 대사는 적다. 해지는 미국을 구경하는 맛이 있지만, 피곤할 때 보기엔 집중하기 쉽지 않겠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늘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연기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하는 배우를 보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다른 의미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다. 눈가의 주름으로도 연기를 한다. 아, 이런 말 하기 싫지만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를 보는 것으로도 영화의 값어치를 했다.
한줄평은 한동안 즐겨 듣던 아이유의 노래 가사를 빌려 본다.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