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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Feb 23. 2024

명대사란 무엇인가

[부당거래]

영화 자체보다 “그 대사”로 더 유명한 영화를 봤는데,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는 명대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명대사는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보자.


1. 짧을 것.

명대사의 조건 중 중요도가 가장 낮은 조건이다. 모든 명대사가 짧을 필요는 없지만, 임팩트의 크기는 대사가 짧을수록 커진다. 예를 들어, 애나의 “Indefinitely”나 스네이프 교수의 “Always” 그리고 멜빈의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은 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대사이지만, 임팩트는 앞의 두 대사가 압도적이다.



2. 재치 있을 것.

재치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극의 진행이나 이야기와 관계없어도 명대사가 탄생한다. 물론 유머가 적중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분위기나 톤을 잘 사용해야 하겠다. 납득이의 “존나 비벼 “나 닥터 스트레인지의 “Dormammu, I’ve come to bargain “같은 대사들은 관객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한다.


3. 캐릭터의 성격 또는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나타낼 것.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대사들도 좋은 대사가 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 “I can do this all day”를 힘겹게 내뱉었을 때 캡틴의 의로움을 알 수 있고, 수양대군이 권력을 이미 휘어잡고도 관상가 양반에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물었을 때는 그의 권력욕과 폭력성에 진저리가 쳐졌을 것이다.


또 캐릭터 간의 관계를 정의해 주는 대사들도 좋은 대사인데, 자신을 이용해먹기만 하는 은미정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그를 끊어내지 못하는 박화영이 “니들은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할 때의 그의 성격과 둘의 관계가 드러난다. 또 악이 없으면 선의 존재가치가 있는가 질문하는 조커의 “You complete me”도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4. 다양한 감정을 함축할 것.

어떤 대사는 한 가지 감정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주로 복잡한 심경의 캐릭터에게서 나오는 대사인데, 수준 높은 연기력이 요구되는 대사겠다. 납치범으로 의심받는 노부요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묻는 경찰의 질문에 "글쎄요, 뭐라고 불렀을까요?"라고 대답했을 때 이 안에는 뭐라고 불렀든지 도무지 상관없고 린의 안전 여부만이 중요하다는 걱정과 학대하던 부모는 두고 본인을 린이에게서 분리한 것에 대한 분노와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5.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할 것.

명대사의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조건이겠다. 다른 조건들은 차치하더라도 감정을 정확하게,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말로 전달할 수 있는 대사가 명대사가 된다. 지금까지 라일리와 함께였지만 라일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걸 깨달은 빙봉의 “Take her to the moon for me”나 윌의 닫힌 마음을 눈물과 함께 열어버린 숀 교수님의 “It’s not your fault”처럼 극이 진행되면서 쌓인 감정들을 터뜨린다.



나열한 조건들을 봤을 때 주검사의 그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는 명대사인가.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나오는 이 대사는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게 권리인 줄 안다거나 하는 사람은 더더욱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류승범의 비꼬는 연기가 그 맛을 잘 살린 것뿐. 명연기라고 할 순 있겠지만 명대사라고 하기엔 명대사의 어느 조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냥 저 대사가 현실을 살면서 와닿는 말일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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