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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Dec 20. 2017

[초행]

'어딜 가느냐', '무엇을 보느냐', '뭘 먹느냐' 보다 '누구와'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초행길을 걸어야 하는 사건들이 몇 가지가 있다. 초행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을 하고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첫 번째가 수능인 것 같다. 수능 전까지는 모두가 도와주지만 당일은 오로지 혼자서 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도 그렇다. 전날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격려받고 입대 직전까지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이지만 결국 들어갈 땐 혼자다(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물론 있지만). 그리고 그 이후로 졸업을 하게 되고, 진로를 결정하는 모든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결정들을 하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결혼일 것이다. 결혼을 할지 말지부터 결정해야 하고, 누구와 할지, 어떻게 할지, 언제 할지, 어디서 할지 결정할 것이 오조 오억 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누구와'겠다.

졸업을 하게 되고, 진로를 결정하는 모든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결정들을 하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결혼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많은 초행길들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연인은 실제로 새로운 장소에 가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방문한다. 그 초행의 두려움과 어색함이 긴 침묵으로 전달된다. 유독 롱테이크 신이 많다고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장면을 애드리브로 연출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음은 배우들의 뛰어난 역량이기도 할 것이고, 혹은 그들의 실제 모습이 조금은 드러난 것도 같다. 이 때문인지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준다. 초행은 두렵고 어색하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결혼이 그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행복하지만은 않은 장면들이 나온다.

불행한 상황 속에서 둘은 늘 함께 있다. 거기서 묘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각자의 가정이 그렇게 행복하진 않지만 둘은 함께 있으면 괜찮다. 이 영화는 그게 결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유희열의 아내가 유희열에게 해준 이야기인데 "행복해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함께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 만나는 것"이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유희열은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저 한 문장을 영화로 풀어놓은 듯하다.

행복해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함께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 만나는 것


브런치로 잠깐 청첩장을 올려서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혼을 준비 중이다(글을 쓰는 지금은 D-2, 발행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할 예정이다).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던 중에 갑자기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초행]을 봤는데, 감회가 아주 새롭다. 왜냐하면 [초행]의 연인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며 양 쪽 부모님께 압박만 받는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가 있다고 들었다. 보진 않았지만 제목부터 정말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이번 생은 누구나 처음이니까. [초행]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모두 처음 걸어본 길이다.


언젠가부터 너무 각 잡고 리뷰를 쓰려다 보니 중간에 본 영화는 많은데, 리뷰가 밀려서 안 쓰게 되네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정신 없어지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그냥 가볍게 툭툭 쓰기로 작정하고 정말 오랜만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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