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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Apr 14. 2018

[인사이드 아웃]

어른이 된 라일리를 상상하기 싫은 이유

유튜브: https://youtu.be/YZ_izyl5aJA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속 감정들과 같이 우리의 감정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감정들은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감정들은 충실한데 그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는 콘솔(?)이 좀 고장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라는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사회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나중에 까맣게 고장나버리는 이 것

실제로 영화 속 어른들의 머릿속을 묘사할 때 각 감정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라일리 아빠의 머릿 속은 버럭이가 주로 지휘를 하고 까칠이나 소심이는 버럭이의 명령에 따른다. 라일리의 엄마의 머릿속은 슬픔이가 지휘하고 다른 감정들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라일리도 성장하며 이 과정을 거칠 것이다. 영화 속 11살의 라일리는 교실에서 자기소개를 하다가 이사 오기 전이 떠올라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12살의 라일리는 자존심에 막혀 슬픔을 표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7살의 라일리는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소심이를 억누르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다닐지도 모르고, 20살의 라일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기쁨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직장에 들어간 라일리는 싫은 직장 상사에게 까칠함과 분노마저 억눌러야 할지도 모른다.

나 대신 라일리를 달에 데려가 줘

모든 것은 추측이지만 우리가 겪어온 일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역할에 맞추어 감정을 억눌러왔다. 영화 속 빙봉이 “나 대신 라일리를 달에 데려가 줘”라고 외치며 기억에서 사라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지었을 것이다. 빙봉과 함께 로켓을 타고 달에 가는 것이 어린 라일리가 꿈꾸는 것이었는데, 현실을 알아가며 그것이 실현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역시 라일리가 사회에 적응해가며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장기 기억 어딘가에 밀어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은 기쁨밖에 없어 보인다. 심지어 어린 라일리도 기쁨이에 의해서 슬픔이가 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 메시지가 그렇듯, 핵심 기억은 기쁨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라일리도 결국 미네소타 집이 그립다는 걸 표현하지 못하고 늘 기뻐야 한다는 생각에 영화의 핵심 갈등이 일어난 것이고, 슬픔을 표현했을 때 비로소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기쁘지 않아도 나를 나로 인정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지내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슬프면 슬픔을 드러내고, 화가 나면 분노를 드러내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이야기하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그저 어리다고 치부되는 것이 사라지면 세상 많은 갈등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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