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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Sep 22. 2018

[쓰리 빌보드]

누가 정의인가

요즘 좋은 영화에 목말랐다. 보는 영화마다 아쉬워서 다시 예전에 좋다고 들었으나 아직 보지 못한 영화를 꺼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상대적으로 더 감명깊게 봤다. 그래서 감히 명작이라고 칭해본다. 이 정도 명작에 무슨 리뷰가 필요할까만은 그래도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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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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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밀드레드는 상당히 폭력적이다. 자기를 비난한다고 엄지손톱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아무나 뻥뻥 발로 찬다. 물론 딸을 잃은 슬픔에 눈에 뵈는 게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공감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오히려 경찰서장 윌러비는 착한 캐릭터다. 밀드레드의 딸을 강간하고 죽인 범인을 잡진 못했지만 심성은 착하다. 하지만 자기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딕슨은 당연히 평면적인 악역으로 그려졌다. 영화 초반에 그는 흑인을 고문하고 경찰의 권위를 남용하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을 폭행하다가 2층에서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직장을 잃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고 감정을 따라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쁘거다거나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밀드레드에게는 윌로비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나쁘게 보였을 것이고, 윌로비는 밀드레드가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것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누가 선한 역할이며 누가 악한 역할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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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사회적 약자가 많이 등장한다. 여성, 흑인, 장애인,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동성애자가 나오는데 이들은 서로 연대하지 않는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밀드레드는 딸의 복수를 위해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딕슨을 죽일 뻔 하고, 장애인은 밀드레드를 도와주지만 결국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흑인인 경찰서장은 중립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하여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영화를 많이 봐온 관객들의 옆구리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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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
“영화는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감독은 신도 판사도 아니다.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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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개의 광고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들이 말하고 싶은 바는 이런 것이다. 주인공도, 사회적약자도 정의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저 평범한 인생이고 동시에 존재 자체가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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