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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Feb 15. 2017

[아무도 모른다]

처절함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역설

 너무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쓰는 걸 반성합니다. 오늘 리뷰는 초등학생 때 엄마가 비디오로 빌려와서 본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그때는 이렇다 할 갈등도 없는 이런 밋밋한 영화를 왜 보는지 몰라서 많이 졸았습니다. 심지어 엄마도 같이 졸았었죠. 재개봉을 했길래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봤습니다. 재밌게 본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찍은 감독의 초기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에, 이번엔 졸지 않고 제대로 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관람을 하면서도 살짝 졸았음을 고백합니다(영화 보며 조는 습관을 고쳐야 할 텐데요). 오랜만의 리뷰 시작합니다.


 내용은 슬프고 처절한데 담담하게 풀어내면 그 역설이 슬픔을 극대화한다. 음악에서는 브로콜리너마저가 그렇다(요즘 트렌드를 못 따라가는 음악 취향 때문에 더 와 닿는 비유를 못해서 아쉽다). 슬픈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영화는 많은 일본 영화들이 그렇고 그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사건'보다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 영화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아동 유기라는 '사건'보다 유기된 아동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언가를 먹고, 자고, 씻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실화를 다루는 사회고발적 성격의 영화는 영화 자체의 재미보다 관객의 공분을 일으키려는 경향이 있다(우리나라 영화인 도가니가 그렇다). [아무도 모른다]는 분노보다는 슬픔을 일으킨다. 그런데 슬픔을 일으키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신파 영화들과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그렇듯 화면이 아름답다. 벚꽃이 흐드러지고 햇빛은 쨍쨍하다. 어두운 분위기에, 주인공이 눈물 연기를 하고, 슬픈 음악이 깔리지도 않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먹먹하게 슬픔이 저민다.


 주인공의 연기가 정말 좋다. 엄청난 연기력이 요구되는 역은 아니었지만 자기 역을 충분히 해냈기에 연기를 잘했다고 평할 수 있다(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무표정 속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진 듯한 눈빛으로 화면을 쳐다보면 그 근심이 우리에게 넘어온다.


유키역의 배우가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그만큼 슬픔이 묵직했다

 연출, 스토리, 음악, 촬영 무엇을 언급하기 쉽지 않다. 모든 설정이 좋다. 가장 적절한 조력자를 만나고, 그 조력자를 만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극을 진행시키는 방법이 좋게 말하면 잔잔하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하다. 그 잔잔하고 밋밋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프게, 미안하게 만든다.


 또 시작됐다. 좋은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딜레마. 리뷰를 잘 써서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을 보게 만들고, 본 사람이 공감하게 하고 싶은데 어렵다.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낸 슬픈 영화 중 한국 영화에는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천우희가 열연한 [한공주]가 있다. 그 작품도 추천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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