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밸리와 로웨나 크레스트 뷰포인트
오늘은 운전을 좀 멀리까지 하는 날이다. 물론 빅토리아에서 포틀랜드까지 온 거리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5일 정도의 짧은 여행 기간 중 왕복 3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 거리는 먼 거리다. 오늘의 목적지는 라벤더 밸리와 로웨나 크레스트 뷰 포인트. 미국 도시에서 운전하는 것은 늘 긴장되는데, 다운타운을 벗어나 라벤더 밸리까지 향하는 길은 평화롭다. 일찍 일어난 탓과 도로의 평화로움이 졸음을 몰고 왔다.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로 잠을 쫓아내고 다시 또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도착한 라벤더 밸리는 온통 보랏빛이었다. 보이는 것은 온통 보라색이었고, 들리는 것은 벌들의 날갯짓 소리였다. 라벤더들 사이에 폭 파묻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벌들의 위협적인 소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영역에 우리가 침범했다가는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저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걸었다.
라벤더 밸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로웨나 크레스트 뷰포인트가 있었다. 당신은 가는 길에 잠들었고, 나는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운전했다. 도착했을 때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장소가 안 보여서 당황했다.
물론 경치는 기가 막힐 정도였지만,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경치가 아니었다.
이런 사진들을 보고 온 것이었는데,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이 일어나서 잠이 좀 깨더니 이 쪽 좀 보라고 말한다.
우리도 이 장소에서 찍힌 수많은 인스타그램 사진들에 하나를 더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허기도 잊고 있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아침 식사 후 커피만 마셨는데 금방 오후 3시가 넘었더랬다.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차에 있던 감자칩을 와구와구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킬러 버거에 들렀다.
킬러 버거에는 특이하게 피넛버터가 든 햄버거가 있었고, 우리는 만족스럽게 배를 채웠다. 배를 채우고 나니 우리가 포틀랜드에 왔었다는 걸 기억할만한 무언가를 사야겠다 싶었다. 뭘 살까 하다가 스타벅스 Been there 머그를 사기로 했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사 모으고 싶었지만 비행기에 들고 타기엔 거추장스럽고, 수하물로 부치기엔 혹여나 깨질까 싶은 애물단지가 될까 봐 못 샀더랬다. 이번 여행은 차를 타고 왔으니 살 기회다.
그리고 냉장고 마그넷도 둘러본다. 어릴 적 냉장고에는 엄마, 아빠가 여기저기 기념품으로 사 온, 혹은 받은 자석과 가정통신문 따위가 붙은 게 늘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어딜 가나 마그넷에 관심이 많다. 그나마 옛날 냉장고에 붙어있던 것들보다 디자인이 많이 예뻐졌다.
그리고 또 쇼핑의 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니만큼 또 사러 간다, 이번엔 신발. 신발 매장인데 이렇게 멋질 필요까지 있나 싶은 곳이었다. 포틀랜드는 어딜 가나 넘치는 힙함(힙합 아님)에 감탄이 나왔는데, 투박한 디자인의 하이킹 신발들이 진열된 유리벽 너머에는 본사로 보이는 직원들이 여기저기에서 회의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었다. 벽 너머는 사무실이라는 말보다는 카페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마실 것과 먹을 것들을 제공하는 스낵바도 있는 듯했다.
한참을 감탄하고 또 밖을 나갔다. 어스름이 지려 하는 시간.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장미 정원에 가봤다. 잠깐 보기에는 큰 정원이었기에 우리는 정원의 한쪽, 장미들을 교접하여 여러 품종을 실험하는 곳만 걸었다. 온갖 모양과 색깔의 장미들이 피어있었다.
포틀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금방 찾아왔다.
캐나다에서의 일상과 여행 이야기를 쓰는 매거진입니다. 정보성 글도 아니고,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일기를 조금 수정해서 올리는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