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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Dec 01. 2019

[우리집]

‘우리’라는 집, 우리집

한참 가을방학 류의 인디 음악에 빠져 살 때가 있었다. 그 음악들은 담담하지만 진심 어린 가사를, 화려하지 않은 보컬이 부른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아주 영리한 방법인데, 이런 음악을 들으면 뮤지션이 하고자 하는 말이 휘발하지 않고 스며든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취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신파 영화들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부르는 일명 ‘세기말 발라드’라면, [우리집]은 앞서 말한 종류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인공 하나가 집을 부순다. 진짜 집은 아니고, 유미-유진 자매와 함께 만든 종이 집이다. 유미는 이에 동참한다. 그리고 셋은 꺼이꺼이 운다. 정말 지키고 싶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노숙인이 무서움에도 용기를 내어 주워온 종이집인데. 그 집을 부수니, 다른 집이 나온다. ‘우리’라는 집이다. 이 세 명은 하나의, 혹은 ‘하나’의, 집이다. 지키고 싶었던 집 때문에 ‘우리’라는 집을 부술 뻔했다.

하나가 그토록 함께 먹고 싶어 했던 밥은 유미-유진과 먹게 됐다. 또 그토록 함께 가고 싶었던 가족 여행도 마찬가지로 두 자매와 다녀왔다. 잔인하게도, 하나가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은 소리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고 여행을 갔을지는 알 수 없다.

살짝 아쉬운 점은 유미-유진이다. 아무래도 감독의 전 작품과 비교하게 되는데, 유미-유진의 이야기나 캐릭터가 지아와 비교된다. 지아는 분명히 선이와 동등한 위치였는데, 유미와 유진이는 절정 부분에서 화를 내며 싸우기 전까지는 특별히 캐릭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의 주체로 보게 하는 것은 연출의 힘이다. 배우들의 대사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도록 한 연기 디렉팅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 자잘한 곳까지 신경 쓴 듯한 소품들도 한몫했다.

나는 아직 평양냉면의 맛은 모르지만 평양냉면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함흥냉면을 냉면으로 치지 않는다고 한다. 자극적인 맛의 함흥식 냉면과 달리 평냉은 천천히 음미할수록 풍성한 향이 난단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들이 음미할수록 풍성한 평양냉면 맛집으로 자리 잡아갈 거라고 확신한다.


+) 일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윤가은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기대해봐도 되는 것일까?


+++) [우리들] 때부터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제목에 영화가 모두 담겨있다.

[우리들] 리뷰: https://brunch.co.kr/@talkabou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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