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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Feb 28. 2020

[체르노빌]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드라마 리뷰. 드라마 리뷰는 안 하려고 했지만, 조금 긴 트릴로지 정도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전체 상영 시간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이 드라마의 완성도는 여느 영화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실제를 고증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상당히 무겁다. 영상의 톤부터 음악, 모든 대사마저 1초도 가벼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건의 끔찍함을 축소시키려 했던 과거의 소련을 반성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만큼 조금도 내용을 왜곡하지 않으려,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내는 영상 속에서 각 캐릭터들이 해야 하는 결정은 결코 담담하게 할 수 있지 않다. 사고 현장 속으로 3명의 잠수부를 보내야 한다거나, 100명의 광부를 원자로 밑으로 보내야 하는 결정을 할 때의 장면이 그렇다. 사람의 목숨으로 저울질을 해야 하는 장면. 이때 주인공의 고뇌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100권쯤 읽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또 실제로 이에 투입된 잠수부와 광부들의 희생정신은 더 그렇다.

사실 이런 장면은 많았다. 할리우드의 숱한 재난영화들이 미국인의 희생정신을 강조하며 “너 먼저 가”라든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이제 클리셰다. 이 드라마에서 이들의 희생을 극적으로 묘사했다면, 오히려 그 몰입도가 덜했을 것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조용하고 진중하게 보여줌으로 그 무게는 고스란히 보고 있는 이에게 전해진다.

실제 일어난 재난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가져야 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다. 물론 악역을 만들고 그들을 벌함으로써 극을 마무리하는 전개는 조금 아쉽지만 그들이 가상의 인물이 아니기에 감안할 만하다. 그리고 이들을 처벌하는 장면이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지도 않았다. 그런 후련함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

“의인도, 악인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며 상황이 그들을 악하게도, 의롭게도 만든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악하게도 의롭게도 될 수 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것은 결국 거짓을 택하지 않는 작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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