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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Apr 07. 2020

[원더]

누군가의 행성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당신이 그저 태양 주위를 뱅뱅 도는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인생이 주인공을 떠받쳐주는 조연일 뿐이라고 느낀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또 당신이 모든 걸 다 망쳐버린 것 같다면, 세상 모든 일이 다 당신 때문에 나빠졌다고 느낀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언뜻 어기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기 가족 모두가 “평범하지 않은” 어기를 사랑한다. 그 반작용으로 평범한 주변인들은 모두 사랑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기의 누나 비아는 평범하지 않은 동생을 둔 덕에 동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안에서 자란다. 물론 비아도 어기를 사랑하지만 본인도 아직 사춘기 소녀이기에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은 어기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 중 하나라고 자조 섞인 농담도 한다. 그런 비아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저스틴이 나타나고, 저스틴은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할머니가 계셨다는 걸 일깨워준다.

어기가 오해를 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 비아가 이런 말을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너와 연관된 것은 아냐


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 말인가.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 속에서 어기는 어느새 본인을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돌고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란다는 부모님이 이혼한 자기의 가족을 싫어했다. 장애를 가진 어기를 중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비아의 가족을 부러워했고, 여름 캠프에서 어기의 누나 행세를 했다. 그렇게 해야 친구들의 주목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어기의 상황을 이용해 인기를 얻었다는 죄책감에 미란다는 비아를 멀리 했다. 그러다 연극의 주인공 자리를 비아에게 넘겨주고 미란다는 홀가분해진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 미란다를 해방시켜주었다.

가장 가슴 아팠지만 위로가 되는 장면은 데이지를 보내주는 장면이다. 가장 약한 존재가 중심이 되었다. 원래 가장 약한 존재이던 어기를 중심으로 돌던 가족은, 데이지가 아픈 것을 알게 되자 바로 데이지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다. 어기마저도.


온 가족이 얼떨결에 주인공이 된 비아의 연극을 관람하고, 아빠는 엄마가 논문을 완성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한다. 어기는 졸업식에서 졸업자 대표로 상을 받고,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준다. 각자가 하는 일은 연관되어 있지 않지만, 동시에 서로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를 감싸 안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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