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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Oct 22. 2021

생각으로부터의 도피

코어를 탄탄하게 가꾸는 삶


나는 현재 5개월 차 백수다. 사회에서 거절당했다기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고 거만하기만 한 내 탓으로 통장 잔고와 적당히 타협하며 백수를 고집하고 있으나, 알게 모르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퇴사 후 한두 달은 실컷 놀면서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나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뭘까.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책도 읽고 글도 썼다. 생각에 있어서만큼은 특히나 끈기가 부족한 나는 장마철 산발적으로 내리는 집중 호우 같은 고민들에 맥 없이 떠밀렸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남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하는 시기에 답도 안 나오는 고민만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생각이 뒤따른다. 




그런 비참한 생각에 몽롱해질 때면 몸을 움직인다. 주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요가나 유산소 운동인데 최근에는 근력 운동도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K-불안은 다른 뭔가를 함으로써 해소된다. 천재지변처럼 찾아와 나를 잠식시키고 마는 생각이라는 재앙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운동이다. 운동이래봐야 집에서 하는 홈트가 전부고 딱 기분전환 정도로만 한다. 하루에 한 시간, 주 3회 이상이라는 기준을 정해두고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이 작은 계획과 실천이 내 일상의 균형을 유지해 준다. 조금 흐트러졌더라도 기준이 있으니 다시 균형에 맞춰 돌아올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은 절대 안 보이는 이유다. 적절한 타협. 유행하는 바디 프로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극단적인 것은 뭐든 싫으므로.





30대에 이르면 운동을 안 하던 사람도 '살기 위해' 운동을 하게 된다. 운동을 안 하면 몸이 더 아픈 이상한 증상은 인간의 생존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나도 처음에는 꾸준히 하는 운동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홈요가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경험을 한 것이다. 요가 수련은 호흡이 중요하고 대부분 느리게 움직인다. 20대에는 다이어트에 대한 욕구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거칠고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헬스나 스쿼시를 선택했었다. 정적인 운동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운동이 나랑 잘 맞을까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천천히 정확한 자세를 취하고 그 상태로 머무르며 버티는 게 내게 잘 맞는 방식이었다. 고통이라고 느낄 만한 정도에서 딱 한 뼘만큼의 여지를 남겨둔 정도의 자극 상태, 그 자체도 좋았지만 호흡을 하며 버티는 대기 상태도 좋았다. 그 몇 초를 버티고 나면 나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감이 솟아나기도 했다. 집에는 거울도 없고 내 자세를 봐줄 코치도 없으니 저절로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초집중하게 된다. 집중하지 않으면 흔들리고 무너지고 끝내는 넘어지기도 했다. 잠시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몸이 반응했다. 사람 몸이 껍데기일 뿐이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다. 몸과 정신은 완벽하게 결부되어 있다. 






홈요가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련을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은 거울 없이 혼자서 수련하는 요가인들을 위해 무척이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오른 골반 앞으로. 무게 중심이 쳐지지 않도록 양 허벅지 안쪽을 탄탄하게 세워주세요." , "날개뼈끼리 모이지 않고 바깥을 향하도록 하고 꼬리뼈를 하늘 높이, 뒤꿈치는 바닥으로 꾹~". 몸의 구석구석 어디에 힘이 들어가고 빠져야 하는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몸의 어느 부분이 나오고 들어가야 하는지까지. 음성에 따라 몸을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영상에서 말하는 딱 그 느낌과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그 포인트를 스스로 찾아내면 새로운 악기를 배워 처음으로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해낸 기분이다. 한 번 연주에 성공한 곡은 이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된다. 요가 수련도 그렇다. 아사나의 정확한 포인트를 느끼고 난 뒤에는 더 안정적으로 한번에 자세를 취할 수 있고 완벽한 내 것이 된다. 이 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자세들을 수월하게 해낼 때 자신감이 붙었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나 오래 움직이지 않아 비틀어진 몸의 상태일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런 몸의 기복은 꾸준함이 가진 힘과 겸손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내면의 나를 가꾸는 데 도 도움이 많이 된다. 어떤 일이든 핵심이 무엇인지,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내가 안정적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멀리 있는 어떤 것들이 나를 괴롭게 할 때는 가까운 것에 집중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몸은 내가 움직이는 만큼 성장하고, 후퇴한다. 가쁜 숨을 벅차게 몰아쉬면서 땀을 내고 나면 그만큼의 지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고, 근육의 위치를 통증으로 느끼면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단단해지며 힘이 생긴다. 그런 솔직함이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생각해 보면 지난 4개월을 방황하며 보냈던 것 같다. 해내야 한다는 욕심에 이것저것 붙잡았다가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자기 비관에 빠지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짜증 섞인 분노를 엄마에게 풀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나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시간은 많은데 마음만 조급해서 하루 종일 바쁘게 보냈어도 막상 뭘 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런 불안 속에서 작게나마 부여잡고 있었던 것들이 나를 일으키고 있다. 글쓰기가 그렇고, 운동이 그렇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하나를 하더라도 집중해서 하자.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하자. 다른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그 생각만 한다. 매일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몸을 쓰면서 시간에 대하여 선택과 집중을 한다. 규칙적인 삶이 주는 안정감은 내게 가성비 좋은 연료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일상의 부유물들을 정제시키면서 내 삶의 코어를 튼튼하게 지켜주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또 돌고 돌아 겨우 하나를 얻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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