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열아홉, 스물아홉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
9살. '프레이저', '폴', '앨런'과 '고든'이 만난다. 워낙 소침하고 주눅 들어있던 '고든'이 마음 쓰이던 '프레이저'는 그들과 함께 하기를 '고든'에게 권한다.
19살. 네 사람은 밴드를 결성하고 같은 꿈을 꾸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각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원래부터 '고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폴'은 밴드에서 '고든'을 탈퇴시키자고 '앨런'과 '프레이저'에게 말했으나 '프레이저'는 '고든'과 가장 가까운 사이의 사람으로서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앨런'이 술에 취해 '고든'에게 홧김에 말해버리고 '고든'은 네 사람의 아지트였던 폐학교에 불을 지르고 죽게 된다.
29살. 그 사건 이후 세 사람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다가 재회하게 된다. 만나서 서로 풀리지 않은 감정을 털어놓다가 문제의 그 사건과 '고든'에 대해 이야기하며 엉켜있던 진실과 속마음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나쁜 자석'은 등장인물인 '고든'이 만든 동화의 제목이다.
'고든'의 동화 <나쁜 자석>
이 동화의 주인공은 물건들이다.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착취를 당하자 물건들은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몰아내고 세상을 차지한다. 끊임없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달리 각자 자신의 일만 해내면 되는 물건들은 점점 외로움을 느끼며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렇게 서로 함께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물건들의 세상에서 다른 물건에게 끊임없이 붙어야 하는 '자석'은 걸림돌이 된다. 자석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리하여 '자석'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따로 만들어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물건을 끌어당길 때와는 달리 '자석'들만 있을 때에는 서로 밀어내는 힘 때문에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원함에도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이 필요했던, 다른 물건들과 붙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옛적의 추억과 영광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하지만 그중 한 '자석'이 다른 '자석'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와 함께 있고자 '나쁜 자석'이 되고자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기 위해 그는 물속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나쁜 자석'이 된다.
자신의 특성인 '자성' 때문에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자석'. 사랑하는 이에게 물리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인 '자성'을 없애야만 한다. 그리고 '고든'이 죽은 후 '고든'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땐 이 이야기가 결국엔 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사람 중에서도 특히 '고든'과 '프레이저'. 그들은 서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확인했음에도 '프레이저'는 '고든'을 밀어낸다.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양했을 것이다. 동성이라는 이유, 혹은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고든'이었기에 등. 그래서 '고든'은 '나쁜 자석'처럼 '프레이저'에게 기억되기 위해, 계속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자 물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그것이 자신의 몸이었든, '고든' 그 자체였든. '나쁜 자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홉 살 '고든'과 '프레이저'가 한밤 중 폐교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프레이저.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줄래? 나는 착한 귀신이니까 친구 할 수 있을 거야. 나를 기억해 줄래?"
-'고든'의 대사 중
이 말을 들은 '프레이저'는 혹시 '고든'이 아닌 자신이 죽거든 귀신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었다고 얘기를 해달라며 부탁한다. '고든'은 아마 미래를, '프레이저'는 그 나이의 아이가 그렇듯 현재의 상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홉 살의 '고든'도, 열아홉의 '고든'도 자신이 사랑하는 '프레이저'와 함께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아홉 살의 '고든'이 폐교에서 귀신은 진짜 있다며, 지금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며 말한 것에서도.
이 둘뿐만 아니라 '앨런'과 '폴' 또한 그렇다. 서로 같이 있을수록 멀어지고 상처만 받았던 두 사람의 관계성. 그리고 그를 숨기기 위해. '폴'은 이득과 우위를 취하기 위해. '앨런'은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각자의 '자성'을 버렸다. '폴'은 진정한 우정을, '앨런'은 친구로서의 지위를.
그리고 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쁜 자석'.
열아홉. '고든'이 죽고 난 후 각자 세 사람이 말하는 '고든'은 다 다른 인물이다. 진정으로 그렇게 기억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며 각자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이저'는 '고든'이 그저 성공한 밴드, 유명인에 대한 목표에 목숨까지 걸었지만 그 밴드에서 강퇴당하자 폐교에 불을 지르고 죽은 거라 말한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고든'에 대한 감정으로 봤을 때는 아마 그렇게 믿고 싶고, 그렇게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을 테다. 자신과 '고든' 사이에 있었던 감정과 교류들을. 그래서 아닌 줄 알면서도 '프레이저'는 '고든'의 죽음 이후 10년간 '고든'은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다고 말한다.
반면 '폴'은 '고든'의 이야기로 성공을 거두자 그를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 비운의 독특한 천재라고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주눅 들었던 '고든'의 성격 탓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폴'은 어린 시절, 그리고 밴드를 했었던 열아홉의 시절에도 계속해서 '고든'을 밀어내고자 한다. '고든'은 그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와주지 않았으니. 그렇게 비관적인 태도로 '고든'을 대하지만 그가 죽고 그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성공을 하자 '고든'에 대한 감정과 태도가 변한다.
마지막으로 '앨런'은 '고든'에 대해 뚜렷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부분 '폴'과 '프레이저'의 싸움을 중재하고, 간간이 동의의 말만을 내뱉을 뿐. 어린 시절부터 '앨런'은 '고든'을 받아들이고 말고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내비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결정을 내리면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고든'이 죽고 난 후의 삶에서도 계속된다.
아마 이 중 진정한 '고든'의 정체성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각자의 이득과 감정으로 만들어낸 '고든'만 있을 뿐.
혹은 그 누구도 '고든'의 정체성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렸으니 '고든'이 없었던 10년의 공백은 남은 이들로 하여금 각자의 상상과 입맛대로 채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