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삶과 이야기

안톤 체홉의 작품들. <벚꽃동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by 소소담

나에게 있어 공연은, 더 크게 예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적 언어이다.

말로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아낌없이 주고받는. 무언의 언어.

하나의 단어도, 음절도 채 오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그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만의 언어.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가담할 수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차마 위로를 건네볼 수 없는 삶을 말하는 공연을 볼 때면 입을 다물게 된다. 내가 느껴볼 수 없는, 공감할 수 없는 일들에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 혼란을 느끼며.


짧은 봄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아직은 남아있는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던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보기 위해.

그러나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말을 잃게 되었다.


안톤 체홉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연극을 위한 삶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작품에는 뚜렷한 플롯이나 사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 우리의 삶은 사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 말이다.

격정적인 감정, 기승전결이 확실한 흐름보다는 잔잔하지만 복잡함이 깃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벚꽃동산>도 마찬가지로 뚜렷한 플롯이 없다. 러시아 귀족 라네프스카야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벚꽃동산이 그녀의 과소비와 사치 습관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맞이하며 결국엔 벚꽃동산이 팔리고 마는 내용이다. 극이 끝날 때까지 이 벚꽃동산이 팔릴 것이라는 경고와 그로 인한 집안사람들의 불안함과 그럼에도 변치 않는 과소비가 반복되는데, 이 고된 반복 속에서 나는 방황했다.


그 누구에게도 공감을 건넬 수도 없었고. 그들에게는 하염없이 고통스러웠을 그 상황에서 나는, 평온했다.

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느껴볼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나는 떠다니는 문어체의 말들로는 19-20세기의 러시아를 이해하거나 느낄 수 없기에. 그 시간들을 온전히 살아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그 시대와 너무도 긴밀히 맞닿아 있었기에.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홉의 다른 작품을 접해볼 기회가 생겼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이 작품은 당시에도 만연했던 불륜을 허물없이 보여준다. 그들의 심리와 생각을 한 치의 가감도 없이.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정열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상황이 펼쳐지는 공연이 아니었음에도, 내가 읽고 있는 글자들은 나에게 분노, 아주 약간은 남아있는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복잡한 심정을. 아마 <벚꽃동산>을 관람했을 그 당시 20세기 러시아 사람들처럼.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불륜은 여전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충분한 문제 거리이고 내가 이를 인식할 수 있으니. 19-20세기의 러시아에서만이 아니라.


이로써 나는 동시대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새겨 넣었다. 내가 주목해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 함께 아파하고 감당해야 할 삶이 어떤 것인지.